예술학교에서 유화를 전공했으나, 1993년에 영화로 진로를 바꾼 그는 베이징 영화학교에 들어가 영화이론을 공부했다. 97년 만든 장편 데뷔작, 16mm장편 극영화 <소무>는 그해 해외에서 가장 큰 주목을 끈 아시아영화 중 하나였으며 중국영화의 일반적인 틀을 벗어나 중국영화의 부흥과 새로운 활력을 상
한 기록영화
장위안은 독립영화 제작자이자 ‘6세대’의 존재를 처음 알렸던 감독이다. 그는 정신박약아의 어머니가 겪는 고통의 체험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린 작품 <마마>(1990)를 발표하면서 주목받았다. 흑백화면이 주를 이루고 있어 실제 상황을 기록한 듯한 분위기를 전달하는 이 작품은 보편
한 지점에서 새로운 실마리를 찾았다. 포스트 천안문 세대의 두 편의 영화에서 오늘날 중국의 모습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개혁 개방과 그 모순의 폭발이었던 6.4를 거친 뒤의 중국을 그린 <北京雜种>과 <蘇州河>를 통해 90년대 중국을 들여다보자.
Ⅱ. 제6세대감독이 만들어 낸 영화의 성취
1.
영화학교에 들어간 지아장커는 2학년 때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한화로 300만원의 돈으로 첫 단편영화를 찍는다. 그의 첫 단편영화인 <샤오산의 귀향>은 홍콩 독립단편영화제에서 금상을 수상하게 되고, 이것이 기회가 되어 장편영화에 데뷔하게 된다.
1997년 북경영화학교를 졸업한중국제6세대로,
중국 전역에 전개했던 내란이었다. 이 시기 동안 대부분의 영화들은 불과 몇 편의 전쟁영화를 제외하고 이유 없이 공개적인 비판과 상영금지 처분을 받아야 했다. 또한 대부분의 영화 제작사들은 폐쇄되었으며 감독, 배우 등을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노동에 동원되어 정치적인 재교육이라는 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