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제1차 천안문사태
1. 사건의 발생 경과
1976년 4월 4일 청명절(淸明節)을 맞은 베이징의 날씨는 잔뜩 흐리고 쌀쌀했다. 돌아가신 선조와 사자를 기리는 이 날, 천안문광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200만 명을 웃도는 중국 인민들은 같은 해 1월 8일
중국의 문학작품을 분석하는 것은 나의 능력 밖이었으며, 영화 또한 평론만 넘칠 뿐 실제 찾아 볼 수 있는 작품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결국 이상은 현실과 타협하였고 나는 원래 주제와는 아주 멀리 벗어난 엉뚱한 지점에서 새로운 실마리를 찾았다. 포스트 천안문 세대의 두 편의 영화에서 오늘날 중국
Ⅰ. 들어가며
중국영화는 1908년 베이징에서 촬영된 경극의 실사 필름에서 시작되는 중국영화는 이후 상하이·광둥·홍콩 등지를 중심으로 활발히 제작되었다. 1905년을 영화 출발의 원년으로 삼는 중국 영화는 100여 년간 중국현대사의 파란만장한 변화를 거쳐 오며 독자적인 영화예술의 거대한 흐름
Ⅰ. 제 6세대 영화
1. 시대적 배경
1989년 6월 4일 민주화를 요구하며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서 연좌시위를 벌이던 학생, 노동자, 시민들을 계엄군을 동원하여 탱크와 장갑차로 해산시키면서 발포,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이다. 이 시기 중국은 급속한 개혁개방으로 인해 많은 부작용을 안고 있었다. 이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중국 또한 다른 곳과 다를 바가 없으니 이제 그만 정치적이 틀을 영화에 들이대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천안문 사건을 빼놓고 영화를 보는 것은 불가능 하다. 천안문 사건이라는 공통의 트라우마를 가진 북경의 젊은 예술인들의 영향이 영화 전반에 스며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