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채만식의 문학이 우선 사회와 문학의 대응관계라는 입장에서 볼 때 1930년대가 처한 시대적 갈등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기는 36년간 植民地史 가운데 이른바 민주사변으로 특징지어지게 되고 일제의 잔인하고 악랄한 경제수탈이 심화되던 시대이다.
이미 1910년대에 <토지조사사업>을 실
있으며, ‘비판’보다는 ‘비난’의 성질을 띠고 있는데, 이것은 채만식의 의도적인 설정으로 보인다. 2번은 일면 합당해보이기도 하지만, 부자라고 해서 일제에 의한 억압이 덜하지는 않았을 것임을 상기해야 한다. 오히려 부자이기 때문에 친일의 유혹을 받았을 수도 있고, 더 억압을 받았을 수도 있
채만식의 문학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물론 친일이라는 논쟁을 할 때 어디까지가 친일이고 어디까지가 친일이 아닌지를 나누는 작업이 매우 주관적인 것임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친일작가로 규정되고, 특히 해방이후 자신의 친일을 반성하는 자전적 소설 「민족의 죄인」을 썼
채만식의 발언과 무관하지 않다. 즉 채만식이 다시 풍자의 수법을 채택하게 된 동기는 조선 현실이 틀어져 간다는 인식과 관련된다. 일제 강점기에 민족을 팔아 자신의 잇속을 채웠던 친일파가 해방된 조국에서도 다시 득세하는 불의가 세상에 만연하였으므로 그것은 <치숙>의 시대가 복귀한 세계였다.
Ⅱ. 채만식의 문학세계
1. 시기별 분류
채만식은 1923년부터 1950년까지 시를 제외한 전 장르에 걸친 작품 활동을 했다.
구 분
장편소설
중편소설
단편소설
가요
동화
희곡
수필
평론․서평
작품수
(편)
11
10
75
1
3
31
189
63
① 제 1기(1923년~1936년)
채만식은 처녀작인 「과도기」(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