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의 해석에 따르면, 최초로 서양철학이 결정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시대에 형이상학의 주된 물음인 전체로서의 존재자 자체에 대한물음에 그 진정한 시원이 되었던 저 그리스인들은 존재자를 '피지스'(S)라 불렀으며, 그것은 오늘날 자연과학적인 의미에서의 질료적 사물들의 총체라든가 사
예술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공부를 하였다. 그러나 그는 전공공부 보다는 오히려 철학에 관심을 가지며 철학과 강의실에 기웃거리는 학생이었다. 그러던 그가 동아리에서 사진을 접하게 되며 사진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물론 그는 사진에 대한 정규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세계를
예술의 독립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예술의 독립성 개념을 명료하게 해보고자 한다. 먼저 예술의 독립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예술이 미(美)에 대한 강박과 교조적 형식주의으로부터 어떻게 해방되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예술작품이 가지는 독립적 지
대한 열정을 나누었다. 카뮈는 플로티노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술에 나타나 있는 헬레니즘과 그리스도교 사상의 관계를 다룬 논문으로 1936년에 고등교육수료증을 받았다. 그는 교수자격심사(이 심사를 통과했다면 그는 대학교수로서의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름)에 응하려했지만, 결핵이 재발해
대한 호의와 깊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문화전통을 포기할 만큼 신념에 찬 유대민족운동가도 아니었다. 그리고 루카치나 브레히트 B. Brecht, 1898~1933
를 통해 맑스주의를 접하게 된 후에도 자신의 신학적 이념을 굽히지 않음으로써 정통 맑스주의에서도 비껴서고 있다. 게다가 학술적이고 경제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