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으로 하여 17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엽 사이에 여항에서 발생하고 구연되던 이야기들이 기록으로 정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 초(1621년)에 쓰여진 어우야담이 주로 일화와 전설 위주의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비해 청구야담은 한문단편소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어우야담의
표출되고 야담이나 소설에 적극 수용되었다. 특히나 임진왜란의 충격에 설화로 대응했던 자취는 문헌설화와 구전설화 양쪽에 서 모두 잘 나타난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많은 설화 총집들이 꾸며졌는데 대표적으로 <계서야담(溪西野談)>, <청구야담(靑邱野談)>, <동야휘집(東野彙輯)> 등이 있다.
야담의 변이 양상과 의미연구」, 연세대대학원, 1988
다. 박희병 : 대부분의 경우 형상력의 발전이나 구성의 치밀함에 있어서 변화가 있지만, 원래 이야기에 대한 편찬자의 적극적 이념 개입은 없고, 근본적으로 민중적 세계관을 기본으로 형성되었다고 보았다. 박희병, 「청구야담연구」, 서울대
야담이란 한문으로 기록된 짧은 길이의 잡다한 이야기라고 규정하면 안 된다. 그보다는 야담집에 실려 있는 다양한 단형서사체 가운데, 당대 현실의 핵심적 문제를 새로운 인물들의 구체적인 갈등을 통해 생동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일련의 작품에 주목해야 한다. ‘한문단편(소설)’ 또는 ‘야담계 한
중심적인 고대문학이 중세의 세계보편사상과 조응하여 고려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으로 보편화되는 것이다. 이 당시 장르와 장르적 특성을 살펴보면, 향유계층에 따라 속악가사와 경기체가, 어부장가, 시조, 가사가 있다. 전자(前者)인 속악가사는 민요와 같이 서민에서부터 왕과 문벌귀족이 향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