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는 고인(古人)을 못봐도 예던 길 앞에 있네. 예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예고 어쩔고? (도산십이곡)라 노래하였던 것이다.
성현이 닦아놓은 길이기에 그대로 따라가면 될 터이다. 하지만, 그 길은 지극히 쉽고도 지극히 어려운 길이었다. “우부(愚夫)도 알며 하거나 그 아
글)'을 지어 뜻을 세우고 각오를 새롭게 하였다.
(2) 율곡이이의 사상
율곡은 사상적인 조예 못지않게 문학에 대한 조예 또한 깊었으며, 사상적으로 한국의 유학사상을 집대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한국의 유교문학이론을 체계화하였다.
1) 문학의 정의 : 문이형도(文以形道)
법을 삼았고 임금은 선생이 엮으신 성학십도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이념을 삼았다. 그 맑고 바르며 크고 높으신 정신과 학풍은 전국에 퍼졌으며, 중국과 일본은 물론이요 서구의 학자에 이르기까지 선생을 숭앙하고 그 학문을 연구하는 바이다.
Ⅱ. 퇴계이황의 철학 사상
퇴계는 심의 지각 판단인
이 황은 서 경덕이 수족의 동작 및 보고 듣고 하는 감각작용을 기지묘처(氣之妙處)라고 한 데 대하여 그를 지기묘처로만 설명하고 이에 귀속시키지 않는 것은 편견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기의 작용이 아니라 이의 작용이라고 하였다.(퇴계집 권25 답정자중별지)
이 황은 또 왕 양명의 주관적
법칙속(천도)에서 자연의 한 부분으로 태어난 인간은 비상한 기질을 지녀서 순리의 바른 이법을 어기고 때로는 성질(칠정)을 부려 자연에게서 입은 공덕을 저버리는 경우가 많다.
Ⅱ. 퇴계이황의 주리적 특징
퇴계가 뛰어나 성리학자 중의 하나이므로, 그의 근본철학이 이기설로 이루어짐은 더 말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