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황은 서 경덕이 수족의 동작 및 보고 듣고 하는 감각작용을 기지묘처(氣之妙處)라고 한 데 대하여 그를 지기묘처로만 설명하고 이에 귀속시키지 않는 것은 편견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기의 작용이 아니라 이의 작용이라고 하였다.(퇴계집 권25 답정자중별지)
이 황은 또 왕 양명의 주관적
사상의 중심 개념인「화쟁」을 풀이한「십문화쟁론」 등은 다행이 남아있다. 그리고 원효철학의 성격을 가장 잘 말해주는 연구저작으로는 「대승기신론소」를 들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대승기신론」는「금강경」「원각경」「능엄경」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의 근본경전인 사교과에 속하는 논서
남명은 평생을 산림의 처사로 일생을 마쳤다. 남명과 퇴계는 서신을 주고받았을 뿐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서로의 학문을 어떻게 평가 하고 있었으며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또한 남명조식의 학문은 어떠한 특징과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퇴계이황의 학문과 더불어 알아보도록
남명은 평생을 산림의 처사로 일생을 마쳤다. 남명과 퇴계는 서신을 주고받았을 뿐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서로의 학문을 어떻게 평가 하고 있었으며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또한 남명조식의 학문은 어떠한 특징과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퇴계이황의 학문과 더불어 알아보도록
우리의 마음에서 순수하게 도덕적인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성리학에서는 누구에게나 선천적으로 인이 심이라는 그릇 속에 있어서 우물 속에 빠지는 아이를 보면 측은해 하는 마음이 발동하여 어린아이를 나도 모르게 구해주는 것이다. 이런 예는 우리가 신문이나 뉴스에서 접할 수 있는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