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를 구축, 자칫하면 여성중심의 분리주의를 범하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었다.
2세대 미술사가들은 가치평가적 기준을 떠나 여성작품의 역사적 형태를 설명하고 이데올로기 속의 여성화가들의 위치를 검증, 분석하는 이른바 해체주의 미술사를 수립하였다.
특히 막시즘, 정신분석학, 해체이론을
분석학자 라캉과 교류를 가졌다고 한다. 그 후 1938년 미술인 미술사가 로버트 골드워터와 결혼한 후, 미국으로 이주하여 현재까지 미국에서 활동 중이다.
부르주아는 1930년대 중반에 여성의 문제와 현실을 자동기술적인 드로잉으로 제작하기 시작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이러한 드로잉 작품
미술사가들의 여성 미술가에 대한 일방적인 무시와 폄하가 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있는 미술사가인 곰브리치 (Gombrich, E. H)와 잰슨( Janson, H. W)의 책에서는 여성 미술가에 대한 이야기가 일언반구조차 언급되어있지 않다. 만약 여성미술가들의 작품이 미술사에서 논할 만큼 표
형성되었던 것이다. 팝 아트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상황을 배경으로 출현하였다. 다시 말해 팝 아트를 생성해내고 그 소재를 제공해 준 것은 산업구조와 문화구조상의 변화인 것이며, 따라서 팝 아트를 촉발시킨 계기는 기계기술상의 혁신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2) 추상표현주의의 한계
추상
페미니즘작품이었다. 시카고는 여기서 디너파티에 초대된 39인의 여류명사들에게 헌정하는 39개의 자궁형 도자기 접시를 제작, 자궁의 제식으로 여성의 파워를 과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작품을 비롯한 시카고의 자궁 이미지들이 생물학적으로 고유한 여성 이미지를 강조하려는 것인지, 정치적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