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계시한 진리를 변증해야만 한다. 이처럼 토마스주의는 이성과 신앙이 서로 배치하지 않으며 이성은 신앙을 주요하게 도와줄 수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서양 중세 천년과 또한 그 이후의 토대를 놓았다고 알려져 있는 성 어거스틴의 신앙과 이성에 입장을 잠시 살펴보지 않을 수
하나님의 형상을 또 다른 논증으로 제시한다. 즉 만일 하나님이 비물질적이라면 물질적인 피조물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다고 말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더욱이 모든 몸은 4개의 요소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어느 것 하나 영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어거스틴의 사랑의 개념은 성서적인 아가
대한 대안을 제시했지만, 그것은 대안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 임시방편마저도 계몽주의가 낳은 하나의 종교 신학에 불과했다. 그러나 고속으로 질주하던 모더니즘은 20세기 위대한 신학자 칼 바르트와 세계 제1,2차 대전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히면서 그 속력이 급격하
하나님의 구원을 성서의 본래적 뜻에 따라 포괄적이며 전체적으로 파악해야 하며 그리스도의 존재를 우주적 차원에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원의 "인간학적 위축" 에 반하여 오늘의 신학에 있어서 하나님의 구원으로 이해된다. 인간의 영혼이나 정신뿐만 아니라 온 우주가 하나님의 구원 대상
대한 언급이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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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편지(letters)와 구별되는 서한(epistles)을 쓰는 풍습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아돌프 다이쓰만의 강조에 의하면, 보통편지(letters)는 개인적인 문서로 일시적인 환경을 취급하는 반면, 서한(epistles)은 보다 높은 수준의 문학적 노력을 들여, 그 서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