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한 성산별곡은 정극인의 상춘곡, 면앙정 송순의 면앙정가, 정해정의 석촌별곡으로 이어지는 호남 가단의 중요한 맥을 형성하고 있다.
송강 정철은 강원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관동지방의 해금강, 내금강, 외금강 등의 절승지와 관동팔경 관동팔경 : 관동팔경은 관동지방 즉 대관령 동쪽의 바닷가
자연을 단지 정치현실의 반대항으로서만 그 성격을 규정한다면 자연이 지닐 수 있는 다양한 의미가 제대로 드러나기 어렵게 된다. 따라서 강호가사의 의미는 광의적으로 설정해야 할 것이다.
강호가사는 창작자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유명씨의 작품이 많으며 시조와는 달리 거의 제목을 갖추
하서, 김윤제의 문하에서 본격적인 학업을 쌓기 시작했고, 특히 호남지방의 세족인 광산김씨의 우산 아래서 많은 문인들과 교류를 맺으며 호남 사림(士林)의 일원으로 성장한다.
27세에 이르러 정철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게 되는데, 그 무렵 정계는 소윤의 영수인 윤형원 일파와 새롭게 득
송강 정철에 대하여
송강 정철(松江 鄭澈 : 1536~1593)은 조선 선조(14대) 때의 명신이면서 문인으로서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이며,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율곡 이이와 동갑내기인 정철은 돈녕부 판관을 지낸 정유침의 아들로서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당대의 명유들이었던 하서 김인후, 고
노래들을 가리킨다 하층민의 신분에 속하던 이러한 소리패들은 가단을 형성해서 활동하던 중인출신의 소리패들과는 달리, 민속음악의 가락을 새롭게 변형시키고 가다듬으면서 민요, 무가, 시조, 가사, 판소리 등의 기존의 시가양식의 노랫말을 수용하여 놀이마당에서 부르는 음악으로 사용했다 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