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송강정철의 생애
정철은 영일 정씨의 후예로 그 선대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정철은 부친 정유침이 음보(蔭補)로 돈녕부판관이 된지 3년 후인 1536년 대궐 근처인 장의동에서 태어났는데, 4남 3녀 중 늦둥이 막내로 태어난 그는 특히 세자의 양제인 큰누님의 귀여움을 받아 자유롭
송강의 시조나 가사 작품이 각 급 학교의 교과서에 실려,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를 가사 문학의 第一人者로 평가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송강은 우리 국문학사상 적어도 가사 문학에 한해서는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송강의 가사는 문
다루어 질 내용들
은 정철에 관계되는 것은 모두가 그 대상이 된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송강의 시대 배경과 생애, 그의 정치가로서의 모습, 자연 속에 시인으로서의 모습, 그가 남긴 작품속에 나타나는 문학적 특질들을 다룰 것이다. 그리고 그가 남긴 문학사적위치에 대해 간단히 언급
문학과 근대 이전의 고전문학 사이에 파인 단절의 골 역시 크고 깊다. 이에 따라 조선시대에 향유했던 대부분 전통장르들은 서구의 문학적 패러다임을 수용한 근대문학의 형성과 더불어 한꺼번에 소멸되고 말았다. 오직 시조만이 살아남아 ‘현대시조’라는 이름으로 현대문학의 장르 속에 재편되어,
문학관이 형성되었다.
3. 작품 선정의 이유
이 노래는 송강(松江)이 45세 되던 때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내(內), 외(外), 해(海)금강과 관동팔경을 유람한 후 그 여정의 아름다운 경치와 고사(故事), 풍속 등을 읊은 작품이다. 활달한 분위기, 낭만적인 서정이 넘치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