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대한평가를 재조명하면서 결코 고종이 유약한 임금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2. 본론
1)개항초기
서양문명은 19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동양사회에 전혀 다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정치․경제․군사 등 모든 부분에서 서양문명은 동양의 정치 지배자들
고종시대의 재조명』등의 연구는 당시의 한국사회에 대한 역사의 왜곡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보여줌으로서 한국의 근대사를 보는 시각을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명성황후 역시 그러한 왜곡의 중심에 있다고 전제하고 그녀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를 살펴보고
평가는 한철호의 「개화·일제강점기 김옥균에 대한 역사적 평가」(2004)의 pp.55~56를 참조하였다.
4. 북한학계에서의 김옥균 연구와 평가
사회주의 체제가 성립된 이후 북한의 근대사 연구는 모두 사적 유물론적 방법을 취하고 있다. 해방이후 북한학계에서 김옥균과 갑신정변을 서술한 최초의
대한제국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는 측이라고 해서 우리의 중세와 근대사가 구제불능이라는 등의 국사에 대한 비관론적 입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뛰어난 흡수역량이 있고 이는 다름 아닌 자기문화, 사회적 능력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입증하기 위한 연구를 하자는 것이
평가하는 데에 잣대로 쓰고 있는 ‘근대화’의 개념은 한국적 토양에서 자라난 토착정권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당대의 자생적 성장 가능성에 대해 전면적으로 회의하고 있어, 이 시기에 대한 연구 자체를 활성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내재적 발전론’ 측면에서의 연구는, 고종이 지휘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