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근대 또는 근대성의 인식 문제는 한국 근대사의 핵심적인 연구테마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모토가 된 근대화는 어서 빨리 서양의 근대를 성취해야 한다는근대주의로 인식되면서 군사정권에 의해 민주화와 대립적 개념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서양의 근대를 절대적인 추
사회주의이념은 그 성격상 식민지 조선의 대중들에게 효과적인 무기를 제공했으며 그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넷째, 일제의 식민통치방식이 사회주의이념의 수용·확산을 원조했다. 3·1운동 이후 일제는 탄압 일변도의 무단통치만이 효과적인 식민통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문화통치를 내
운동의 전개에서는 기여적 측면이 강했으며 실제로 이 두 흐름의 교차 속에서 독립운동의 구체적 표출이 행해졌다. 특히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큰 것이었다. 사회주의 운동 세력은 일제하에서 노동자․농민의 혁명적 운동을 지도한 세력이었으며, 나아가 광범
시대와 해방 직후 공산주의운동에 관한 연구들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진보적 역사 연구자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제기 되기 시작했다. 특히 일제하 식민지시대에 대한 역사연구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3.1운동 이후 민족해방 운동사를 실질적으로 주도해왔던 사회주의 운동사에 대한 연구
농민들의 봉기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다. 더구나 설상가상으로 1869년~1871년간에 함경도와 평안도 지방을 비롯한 서북지역에 사상 유례가 없는 대흉년까지 들어 기민(飢民)과 아사자(餓死者)가 속출하였다. 이에 농민들의 이농(離農)현상이 심화되어 많은 유민(流民)이 생겨났고, 일부는 화전민(火田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