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았으며 혁신의 선두주자였던 젊은 미술가들은 국전에 대해 반발하면서 집단적 추상미술 운동을 이끌었고 반(反)아카데미즘의 실험을 시도했다. 이러한 추상적 경향은 1957년 ‘현대미술가협회’의 앵포르멜이라 불리는 격정적 화풍뿐만 아니라 1960년을 전후한 한국화단에서도 일어나게 된다.
그룹이 융합된 것이었으며 네덜란드 화가 반동겐도 참여 했다. 그들은 고호, 고갱, 신인상주의, 세잔느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 작품들의 특징은 강렬한 순수 색채에 있었으며 색채는 때로는 세잔느처럼 공간 구성에도 사용했지만 대부분 감정 및 장식적 효과를 위해 임의적으로 사용했다.
작가들에게 경제적인 안정과 사회적 보장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른바 전위 작가를 자처하던 상당수의 미술인들마저도 이 사업에 가담하기 위해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는 사실을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미술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순수추상’의 화가들이 자신의 조형양식을 바꿔
한국화에서 묵법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먹이 화선지 위에서 펼치는 오묘함은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표현방법을 제공하며, 이러한 특성을 이용하여 의외의 효과들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먹이 번지어 퍼지게 하는 발묵법은 작가의 심정과 감동을 화면에 쏟아 놓은 듯한 자유분방한 표현양식으로 골법용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언어 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다른 지역의 사람에게 제시할 수 있는, 우리만의 독특한 회화양식, 즉 ‘한국화가 무엇이다’라는 그 실체를 논리적․미학적으로 더구나 구체적 작품이라는 구체적인 창조를 통해서 제시하여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