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백겸'은 16세기 중엽에서 17세기 초반까지를 살았던 조선의 학자로서, 흔히 실학의 선구자(先驅者)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3~4줄로서 짧게 요약될 수 있을 만큼 한백겸의 학문적 체계나 사상이 좁지만은 않다. 여기에서는 그의 생애와, 저서인 『구암집』·『동국지리지』를 통해, 그의 학문적
고취되었다. 이와 같은 조선후기의 사회변화와 외래적 영향으로 실학이 대두했고 실학의 논의는 더 현실문제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것이 역사학에도 반영되기 시작하여 기존의 정통적인 도덕적 역사관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역사관의 변화를 다음 두 인물-한백겸, 신경준-을 통해 알아보자.
Ⅰ. 울릉도 화산지형의 특징
울릉도 전 지역에서 우리 유관으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과거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수많은 화산지형과 화산암들이다. 이러한 화산섬으로써의 특징은 특히 도동해안, 울릉도 일주도로 일대, 나리분지, 성인봉 등에서 관찰할 수 있다. 울릉도는 신생대 제3기 말에서 제4
한백겸/구암과 효종 때 주전의 필요성과 대동법의 실시를 주장한 김육을 들 수 있다. 실학이 학문적 체계를 이루게 된것은 유형원/번계에 이르러서이고, 하나의 학파를 형성하게 된 것은 18세기에 이르러 이익/성호과 박지원/연암에 의해서이며, 실학사상은 19세기 초기 정약용/다산에 의해서 집대성되
1. 생애와 학문경향
한백겸은 자가 명길(鳴吉), 호는 구암(久菴), 본관은 청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훈신의 집안으로 내려오다 사람으로 전화한 집안이었다.
서경덕의 문인이었던 민순에게서 학문을 배운 한백겸은 1579년(선조 12)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이듬해 부상(父喪)을 당하고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