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백겸'은 16세기 중엽에서 17세기 초반까지를 살았던 조선의 학자로서, 흔히 실학의 선구자(先驅者)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3~4줄로서 짧게 요약될 수 있을 만큼 한백겸의 학문적 체계나 사상이 좁지만은 않다. 여기에서는 그의 생애와, 저서인 『구암집』·『동국지리지』를 통해, 그의 학문적
고취되었다. 이와 같은 조선후기의 사회변화와 외래적 영향으로 실학이 대두했고 실학의 논의는 더 현실문제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것이 역사학에도 반영되기 시작하여 기존의 정통적인 도덕적 역사관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역사관의 변화를 다음 두 인물-한백겸, 신경준-을 통해 알아보자.
역사인식을 당대의 사회상 속에서 학문관, 사회사상, 당파 등의 요소를 고려하여 이해하는 연구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2. 안정복의 생애와 학문
안정복은 경주안씨로 아버지 안극과 어머니 전주이씨 사이에서 1712년 장남으로 태어나 88세가 되던 1791년 광주에서 죽었다. 안정복의 자는 백순(百順)이
사상이 시대조류를 이루게 된 18세기 이후의 서울 및 근기 지방 출신의 실학파 학자들을 연구대상으로 한정한다. 실학파의 학자들은 대체로 양반 신분의 소유자이면서 이조 관료국가의 권력체계에서 이탈 또는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며, 서울 및 근기 지방 출신의 학자들로 주축을 삼고 있다. 이들은 위
임진왜란을 거치고 이어 인조반정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조선사회는 반상의 신분질서가 크게 흔들리는 사회변혁을 거치기 시작했다.
양란의 결과, 농경지가 황폐화되었고 조정에서는 묵은 밭의 개간을 적극 장려했다. 이를 기회로 지배층의 대토지 소유가 가능했다. 따라서 대다수의 농민은 토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