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부 인구는 약 10만 명 선이었으며, 대부분 귀족관료와 그 가족들, 군역에 종사하는 군인, 각종 관청에서 사역되는 관노비와 가내 사노비들로 구성되었고 관할구역은 도성 안과 성 밖 10리(성저10리) 지역이었으며, 대체로 동쪽은 우이천과 중랑천까지 남쪽은 한강변과 용산에 이르렀으며, 서쪽은 양
한성부 인구는 약 10만 명 선이었으며, 대부분 귀족관료와 그 가족들, 군역에 종사하는 군인, 각종 관청에서 사역되는 관노비와 가내 사노비들로 구성되었고 관할구역은 도성 안과 성 밖 10리(성저10리) 지역이었으며, 대체로 동쪽은 우이천과 중랑천까지 남쪽은 한강변과 용산에 이르렀으며, 서쪽은 양
Ⅰ. 서론
조선시대 수도로 지정된 이후 서울이 처음 대대적으로 영역을 넓힌 것은 1936년의 행정구역 확장 때이다. 물론 1936년의 확장은 일제 초기에 실행된 행정체계 개편으로 축소된 기존의 한성부(漢城府) 영역을 회복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조선시대의 성벽 밖 성저십리(城底十里) 지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을 지내고 1633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 문학(文學)에 올랐으나 모함을 받고 파직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왕을 호종하지 않았다 하여 영덕(盈德)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은거했다.
1652년(효종 3) 왕명으로 복직, 예조참의 등에 이르렀으나 서인(西人)의 중상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