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언
남북국시대 동아지중해의 교역활동은 크게 몇 가지 루트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신라와 당의 교역로가 그 첫 번째이며, 그 첫 번째 루트의 주체가 되는 ‘재당 신라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장보고’ 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도록 할 것이며 두 번째로 발해와 왜와의 교역활동에 대한 이야
Ⅰ. 序論
『한국사의 미아 해상왕 장보고의 진실』
우리가 참고한 서적의 부제였다. 이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장보고는 그의 업적에 비해 서는 지나치게 우리 역사에서 저평가 되었고 그동안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이전까지 그는 신라하대에 청해진을 근거로 활동한 지방 호족 정도
Ⅰ. 개요
신라는 한반도의 동남부에 위치하여 처음에는 중국 문물에 직접적으로 접할 수가 없었다. 고구려, 백제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그 문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으므로 문화 발전도 삼국 중에서 가장 뒤지게 되었다. 신라는 삼국 중에서 불교를 가장 늦게 받아들여 법흥왕 15연(528)에야 불교가 공
해상 강국이었음을 입증하는 고려 선박 2척이 발굴돼 고고학계를 흥분시키고 있다.사료상에 나타난 고려는 중국 일본뿐 아니라 이슬람 국가와의 활발한 해상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했던 국가.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사료상의 기록일 뿐 그동안 고려의 해상활동을 증명해 줄 자료가 없어 사학계는
활동은 증가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 즉 나·당간의 각 국가가 가지는 정세의 변화는 항해술, 조선술의 발달과 아울러 장보고의 해상활동은 동아지역의 해상권을 충분히 장악 했으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상황을 증언하고 있는 원인행기를 통해서 보면 양주에는 신라인 무역상이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