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향가는 민족의 노래로서 널리 향수(享受)되면서, 신라인(新羅人)들은 이 향가를 통해 그들의 슬기와 기상을 나타내었다. 고유의 토속 신앙과 접합된 불교적 신앙을 계승한 신화적(神話的)인 세계관 속에 감정을 표백(表白)시켰다. 향가를 좁은 의미로 사뇌가(詞腦歌)로서 삼국 통일(6세기경)부터 고려
의 실제에선 鮮初(선초) 내지 麗代(려대)의 고어휘, 고어법을 면밀히 참고하는 한편 그 음운적 방면 특히 당시의 속음, 방언 등을 끊임없이 고려할 것, 가요로서 음수율을 고려할 것 등이다. 향가와 詞腦歌(사뇌가)의 명칭과 갈래를 보면 향가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은 경덕왕 때 월명사의 도솔가 이
향가는 구비문학적 성격의 작품에서 개인 창작시가 까지 형태와 내용이 단일하지 않다. 향가라는 이름의 당시적 의미는 당시나 밤패에 대응되는 자국어 시가의 총체라고 보아야 한다. 신라인은 향가라는 이름과 더불어 도솔가, 사뇌가, 시내 등의 세분된 명칭을 사용했다.
-형태의 다양성
향가가 하
사뇌가는 신라가요 향가에서 주로 논의하고 시조와 가사는 조선시대의 노래로 간주되어지기 때문에 고려가요의 범주로 넣기에 모호한 면이 있다.
고려가요를 좁은 뜻으로는 속요만을 말한다. 민요에 기반을 두고 있어 소박하고 곡진한 감정을 담고 있는 서정적 성격의 속요와 신흥대사부들의 새로운
향가의 개념 규정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과제가 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지금은 전하지 않는 『三代目』의성격을 파악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왜냐하면 향가에 대한 기록 중에서 『三代目』은 향가를 가장 집대성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향가집『三代目』에 대한 語意를 ‘사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