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있듯이 소금이 생산되었던 도시에도 또한 소금과 관련된 이름이 붙어있다. 지명, 단어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 생활에 소금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다. 소금과 비견될 만한, 우리의 삶에 친숙한 향신료의 하나로 ‘후추’를 찾아볼 수가 있는데 이
유럽은 육로를 동해 향신료 확보가 어려움을 느끼고 이슬람을 거치지 않는 새로운 무역루트를 탐색
▶ 그결과 해로의 가능성을 염두해둔 엔리케왕자의 노력으로 포루투갈이 바다 항해길에 오름.
#중세 레시피로 재현한 스파이스 치킨.
향신료 가 반이고 고기가 반인 이 요리는 중세시대 당시에
동방 제국과의 무역을 통하여 상업이 번창했으며, 서민들은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따라서 문화도 급속도로 발전해 나갔다. 이 시기에도 크리스트교가 상당한 지배권은 가지고 있었지만, 신 중심에서 인간을 위한 교회로 변하였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가 인간성에 대한 자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유럽에서는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하며 서양의 삶 전반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본문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서양 중세의 향신료는 사치품이었고 돈을 대신하였으며, 음식을 먹는 것보다 많은 종류의 향신료를 넣는 것을 더욱 자랑했을 만큼 당시향신료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렇기에 서양에서
중세유럽사회의 침체와 강대해진 상업자본으로 지중해의 무역범주로는 너무 협소하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말해서 르네상스 종교개혁의 시대인 16세기는 동시에 유럽이 항해를 통해 확대 팽창하는 대항해시대이기도 하다. 종래에 지중해나 발트해에 한정되었던 유럽인의 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