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의 훈련과 그의미ꡑ의 측면에서, 언어의 사용이 가장 두드러지고 극대화된 문학 장르인 시를 중심으로 다룰 것이며, 그 시대에 가장 모국어의 사용이 많이 드러났던 시인들인 김소월, 백석, 김영랑의 시를 중심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다. 또한 작가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작품 속에 나타난 Ʈ
중심으로 한 시조부흥운동은 시적 형식의 고정성과 그 전통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제기한다. 전통적 문학 형식이었던 시조를 현대적으로 다시 창작하자는 데 그 목표로 삼고 현대 시조의 가능성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게 했다. 이병기, 이은상 등이 가세한 시조부흥운동은 시조 시학을 성립하여 시조의
현대시의 기틀을 마련했다. 본고에서는 김영랑․백석․정지용․윤동주․이육사를 중심으로 그들이 전개한 시 세계를 통하여 1930년대 시에 대해 알아봄과 동시에 문학사적 의의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Ⅱ. 한국어의 훈련과 그의미
식민지 후기의 한국 시는 일제의 악랄한 검열 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논의의 심화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김소월을 시작으로, 정지용, 백석과 김영랑의 시를 살펴보려고 한다. 이른바 ‘한국어의 훈련’이라 할만한, 강력한 언어 움직임으로서의 색채와 그의미를 더듬어보는 셈이다. 더불어 이러한 논의가 갖는 현실과 담론에 관한 탈주로서
2월에 4학년으로 졸업한 정지용은 5학년으로 진급한다. 이 해에 정지용은 문우회의 학예부장직을 맡으면서 『휘문』창간호의 편집위원이 되었다. 이 해 3월 마포 하류 현석리에서 정지용은 풍랑몽을 썼다. 이는 『요람』지에서 보인 작품이나 1927년 7월 『조선지광』을 통해서 지면에 발표되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