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임오군란
(1) 임오군란의 발발
임오군란은 초기 개화시책에서 소외되어 생활의 위협을 받게 된 서울의 하급군인들과 빈민층이 일으킨 생존권 투쟁의 양상으로 일어났다.
1881년 별기군이 창설되고 군제개혁이 단행되자, 5군영 소속의 상당수 군인들이 실직하고 2군영에 편입된 군인들 또한 별
Ⅰ. 서론
조선 태조는 1392년 즉위 후 민심의 안정을 위하여 국호를 처음에는 고려라 하였고 수도를 그대로 개경에 두었으며 국가제도·풍속·언어 등 모든 면에 걸쳐 고려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다 동년 12월에 국호를 정식으로 조선으로 정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의 정치조직은 고려말기의 것을 토대
성종 때 완성을 본 조선시대 정치의 기준이 된 법전
이․호․예․병․형․공의 6전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6조의 직능에 맞추어 구성된 것으로 조선의 행정사무는 모두 6조에 집중되었으며, 6조는 필요한 규정을 국왕에게 비준을 받아 수교 (受敎)나 수판(受判)으로 법조문화 했다.
수교를 요청하는 한편, 명을 정벌하기 위한 그의 군대가 조선을 통과할 것을 요청하였을 때 조선은 이를 거절하였다.
1592년 봄에 풍신수길은 15만 대군을 파견하여 바다를 건너 부산을 공격케 했다. 일본군은 부산에 상륙한 지 불과 2주 조금 넘어서 수도 서울에 입성하였다. 그동안 조선은 남부 연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