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모죽지랑가」대한 연구들은 대단히 많은 편이다. 이 연구들은 그 논지에서 상당히 엇갈리고 있는데, 크게 향찰해독, 작품해석, 창작시기의 세 영역으로 정리할 수 있다. 향찰의 해독에서 보이는 난맥상은 앞으로 볼 향찰의 해독을 보면 이해가 간다. 그리고 이 해독들의 엇갈림으로 인해,
1-1. 향찰의 발생 배경
한자는 기원전 3-4세기에 한반도에 유입된 것으로 보이며, 어법이 다른 입말을 외래에서 들어온 문자에 맞추는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때문에 유입부터 정착까지의 혼란기가 길었던 한자는 기준이 정립되지 않은 다양한 방법으로 뿌리 내리게 되었다. 그 중 향찰은 한자를 빌
효소왕때에 竹曼郞의 낭도에 得烏급간이 있었는데 화랑의 명단에 올라 있었다. 날마다 나와 출근하고 있었는데, 한번은 한 열흘이나 보이지 않는지라 죽만랑이 그 어머니를 불러 ‘너의 아들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하니 그 어미가 ‘상전인 모랑부 익선 아간이 아들을 부사뇨성 창고지기로 파견하여
☞ 배경설화
<삼국유사> 권2 <효소왕대 죽지랑조(孝昭王代竹旨郞條)>
삼국유사에는 이 노래를 짓게 된 동기를 설명해 주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죽지랑의 무리에 득오곡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매일 죽지랑을 모시다가 갑자기 열흘 가까이 나오지 않으므로 죽지랑이 그의 어미를 불러 연유를
효소왕대에 “죽지랑의 무리에 득오라는 급간이 있었다. 화랑의 책에 이름을 예속시키고 날마다 섬겨 나오더니 10일을 격하여 보이지 않았다.” 라는 구절에서 보듯이 두 사람은 첫 만남 이후에 헤어진 적이 없다가 득오가 부산성 창직으로 착출 되었을 때가 처음이므로 득오가 죽지랑을 맞보기를 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