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인쇄에 관한 초기지식과 그 이로운 점은 비록 북송의 교니활자에서 얻었다하더라도, 그것을 금속활자인쇄로 창안 발전시키는데 성공한 겨레는 바로 우리의 조상들이었다. 특히 금속활자 인쇄는 영토가 좁고 독서인구가 한정된 우리나라에 안성맞춤이어서 일찍이 고려조에서 발상 보급되어던 것
활자가 자주 떨어지거나 동요가 생겼고 또한 그 재료가 흙이어서 자주 부서지고 일그러져서 실용화되지 못한 하나의 발명작으로 그치고 말았다. 이렇듯 교니활자의 인쇄는 비록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단점과 실패를 줄기차게 연구하여 마침내 고려에서 주자를 만들어 금속활자인쇄를 실시케
금속활자와 인쇄술의 개발로 인해 농경사회에 머물고 있던 인류는 산업사회로 진일보했으며 이제 지식은 독점이 아니라 확산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인류 역사적으로 큰 획을 그은 사건인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와 인쇄술이 15세기 중엽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한국의
한국에서는 금속활자의 발명과 사용, 한글의 창제와 반포라는 한국출판사상 획기적이 2대 받침대가 모두 정보차원에서 성취되어왔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2대 지주가 계승 발전되지 못한 원인으로 몇 가지가 있다. 활자의 주조술의 결함과 인쇄방식의 기계화가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출판에
활자 인쇄로는 가장 먼저 이루어진 것이 11세기이다. 송나라의 필승(畢昇)이 흙활자로 [정덕현지](旌德縣志)를 찍었었다. 이보다 앞선 것으로 금판에 글자를 새겨서 금강경 판을 만든 것(왕궁탑 출토)은 부처님께 바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쇄에 대한 열망은 신라에서 고려로 이로진다. 고려 때 흙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