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는 진작부터 절감해오던 바, 예술과 삶이라는 양극 사이에서 절망하면서 두 세계를 시적으로만, 다시 말해 허구적으로만 극복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거기서 더 나아가 양자간의 실제적인 조화와 통일의 가능성을 찾아 안간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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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독일 시인 릴케의 내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단서는 위의 글에서 주장되는 것처럼 그가 초기에 서구의 상징주의의 시 이론을 소화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의 시는 말라르메나 발레리류의 그것보다는 릴케류의 그것과 통한다. 김춘수의 초기시는 사실 릴케의 초기시에 많은 영향을 입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김춘수
세계적인 문학가이며 자연연구가이다.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으로도 활약하였다. 주저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1829) 《파우스트》 등이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독일의 시인. 로뎅의 비서였던 시절이 그의 예술에 큰 영향을 주었다. 《두이노의 비가》나 《오르페우스에게 부치는 소네
릴케에게 인정을 받았다. 헤세는 이로써 시인으로 입신할 기회를 얻었지만, 그의 이름을 유명하게 하고 그에게 확고한 문학적 지위를 얻게 해준 것은 최초의 장편소설 『페터카멘친트』(1904)였다.
1904년 헤세는 스위스의 베른으로 이주했는데, 1914년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 포로 기구〉에서
릴케는 신도 천사도 다다를 수 없는 우주공간 속으로 내던져진 고독한 인간의 내면세계를 노래함으로써 현대인의 고독과 존재 및 그 의미를 냉철하게 탐구했다.
2.2 한국적 전개과정
우리 문학에 모더니즘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근대문학의 시인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