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민족사학은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1920년대에 크게 개발되었다. 주로 문화사학과 유심론사학의 방법으로 개발되어갔다. 그러나 당시 조선사편수회를 통하여 쏟아져 나오던 식민사학의 성과물에 대응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수량의 면에서 식민사학에 비할 바가 못
신채호(이하 단재)의 역사학은, 역사관․역사연구 방법론에서 이미 근대 사학의 수준에 도달하였고, 사학 정신이나 그 지향점 또한 근대 민족주의 사학의 결실이었고, 단재에 이르러서 근대 민족주의 사학이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그의 역사관은 한국사 인식체계와 역사 무대의 확대라는
신채호사학은 박은식 사학과 함께 한국사학을 근대적인 학문으로 성립시키는 데 큰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채호와 박은식의 역사학은 민족주의사관에 입각하였다는 점과 역사학방법론을 수용하여 한국사학을 근대적인 학문으로 성립시키려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공통되지만 양자간에는
민족국가를 구성하는 신국민이었다. 그러나 국권회복은 좌절되었고, 신채호는 국권회복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정신적 국가 내지 국수를 강조해보기도 하지만, 신국민이 살아갈 장을 상실한 이상 그것은 곧 공허할 수밖에 없다. 형식적 국가가 없는 정신적 국가 상태에서는 신국민이 구체적 적극적으로
1910~1920년대의 조선에서는 일제의 식민통치로 인해 우리 민족의 말은 물론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배우고 가르치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다. 게다가 대한제국 시기의 사서 또한 이미 식민사학에 오염되어 있었기에 이 시기에는 개인의 역사의식과 역사를 알고자 하는 지적 호기심마저도 일제의 식민사학(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