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를 건국한 대조영(大祚榮 : 고왕)도 그의 아버지 걸걸중상(乞乞仲象)과 함께 요서 지방의 영주(營州)로 옮겼다. 당시 영주는 당이 북동방의 이민족을 제어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운영한 전략 도시였다. 이곳에는 고구려 유민을 비롯하여 말갈인·거란인 등 다수 민족이 집결되어 있었다. 이들은 당이
발해의 위상정립을 위하여 정치, 문화, 외교, 계승의식을 다루어 볼 것이다.
정치면에서는 지방제도를 다루어 고구려와 중복되는 지역의 통치와 각 지방에서 외교시에 사용했던 교통로를 통해 발해의 지방통치제도 모습을 살펴볼 것이다.
문화면에서는 발해건축 중 온돌과 고분을 통해 그 안에서 우
본문내용
발해사 연구가 한국사 연구분야 중에서 가장 부진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물론 문헌자료의 부족이 발해사 연구부진의 기본적 취약점이 되고 있어 발해사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고사하고 문헌자료에 대한 깊이있는 검증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않는 실정이다. 이런 상태에서 발해사가 한
Ⅰ 서론
발해는 698년부터 926년까지 존재한 동아시아의 고대 국가로, 현재의 북동 중국, 북한, 그리고 러시아의 일부 지역을 포괄하였다. 발해문화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고구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중국의 일부로
Ⅰ 서론
역사적 정체성과 문화적 유산의 계승 여부는 국가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이다. 특히, 발해의 문화와 역사는 고구려의 후계자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며, 이를 통해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적 지형을 재조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