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왕이 자신이 신하로 일컬으며 태조에게 예물을 받쳤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빈번히 조선에 조공을 받쳤다. 유구는 또한 중국에도 빈번히 조공을 받쳐왔는데 이러한 조공의 예에 대해 중국 측은 국왕이 즉위하면 그로부터 2~3년 후에 책봉사절을 보내어 국왕 취임을 인정하는 절차를 밟게 했으나 이는
중산왕(中山王) 찰도(察度)다. 따라서 조공관계를 맺은 실질적 목적은 대국으로부터 정치․경제적 후원을 받아 삼산의 분열 상황을 속히 타파하려는 것이었다. 실제로 조공관계는 세력 간 비례로 이어져 류큐가 통일왕조를 이룩하는 계기로 이어졌다.
1429년 류큐왕조의 통일 이후에도 중국과의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