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들을 참고로 소개함으로써, 우리 문학사에서 농민문학론이 어떠한 양상으로 흘러와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개괄적으로 이해하고 그 문학사적 의의를 밝혀보고자 노력하였다. 농민문학에 대한 논의들을 정리하는데 있어서는,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로 농민문학론의 양상을 시기적으로 나누
705호의 농가 중 3,587호(자소낙농 1,859호, 소작농 1,728호)를 대상으로 1933년과 1938년에 농가경제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자료에 따르면 조사 농가 주 부채농가 호수의 비율은 자소작농 85.6%, 소작농 88.7%로 나타났다. 그리고 농가부채의 원인으로서 자소낙농은 생산적 부채가 비생산적 부채보다 많은 데 반해
주요섭의 일련의 작품들이 모두 죽음을 제재로 택하고 있다. 이는 20년대 현실에 대한 인식이 병적이고 종말론적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학사에서 1920년대는 활발한 창작 활동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특히, 최초의 동인지로 볼 수 있는 '창조' 의 탄생 이후, 수많은 문
점에서 그 특징을 지적할 수 있다. 그의 몇 소설은 계급주의 사상의 영향을 입은바 있다.
셋째, 1930년대로 이 시기는 정치의 위기와 경제적 공황, 지식인의 정신적 불안, 경제적 불안 등 국내외적으로 가장 위기의 시대로 파악된다. 채만식의 경우 이즈음의 작품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