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학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것은 신학이 ‘인간의 하나님으로서의 하나님’(Gott als derGottderMensch)과 ‘하나님의 인간으로서의 인간’(derMensch als derMenschGottes)을 다루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인간론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제시해주는 좋은 예들이다.
그래서 철학자들도
인간의 윤리적인 문제에 귀결되고 있으므로 두 작품들에서 나타난 작중인물들의 성격을 중심으로 윤리적으로 타락한 현실을 개선 또는 구제하기 위하여 노력한 이들의 공통된 특징과 함께 그들을 ‘용감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있는 작가의 의도를 밝혀 보고자 하는데 본 논문의 의의를 두고자 한
인간의 언어 형태로 주어진 이래 Text와 Context의 문제는 끊임없이 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계몽주의 이후로 전통적으로 의심할 수 없이 자명한 것으로 생각되던 신에 대한 토대들이 무너짐으로써 그 필요성은 날로 증대되고 있다. 헤겔(Hegel)의 최후의 형이상학적 대통합의 시도가 실패함에 따라서
인간을 심판하시는 분이라고 반박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가르치지 않는 자유주의 신학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당시 로마 가톨릭 신학자 카를 아담은 '칼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폭탄을 던졌다'고 말할 정도로 유럽신학계의 충격은 컸는데, 칼 바르트 자신도 '나는 우연히 잡은 교회종
인간학에 대하여 살펴볼 것이다. 그는 앞서 말한 보편역사에 바탕을 두고 인간학에 관한 연구를 내놓는다. 이 연구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상대인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을 무한히 개방시켜 나가는 세계 개방적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판넨베르그에게 있어서 인간학은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