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전(虞裳傳)을 고르게 되었다. 금섬전(金蟾傳)과 성풍류(醒風流)는 텍스트를 구하지 못하여 작품에 대한 줄거리와 그 밖의 자료들을 토대로 레포트를 작성했다. 그리고 박지원의 우상전(虞裳傳)은 그나마 알려진 소설이라 텍스트를 구해서 읽고 레포트를 작성했다.
또한 고전소설은 인물을 중시
1752년(영조 28) 전주이씨(全州李氏) 보천(輔天)의 딸과 혼인하면서 《맹자》를 중심으로 학문에 정진하게 되었으며, 특히 보천의 아우 양천(亮天)에게서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 史記》를 비롯하여 주로 역사서적을 교훈받아 문장 쓰는 법을 터득하고 많은 논설을 습작하였다.
수년간의 학업에서
1.들어가며
「양반전」에는 양반의 사려는 사람이 양반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해 나오는 장면이 있다. 언제나 새벽에 일어나며, 어려운 책을 잘 읽어야 하며, 굶주림과 추위를 말없이 견디며, 요란하게 세수하지 않으며, 신을 끌지 않고, 더워도 버선을 벗지 않는 등의 어려운 것만 있어 그 사
Ⅰ. 구전과 구전예언
구전 예언은 다른 담화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전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이야기판에 있어 다른 수많은 형태의 담화들과 공존하면서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구전 예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담화 형태는 무엇보다도 ‘풍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은밀하
Ⅰ. 연암 박지원의 생애
북학파의 거성인 연암 박지원(1737-1805)을 새삼 소개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는 일찍이 우암 송시열 일계의 고루한 학자들이 존명사상에 얽혀서 아무런 실천이 없는 유명무실한 북벌책을 부르짖음에 반하여 북학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또 중국의 산천, 풍토와 문물, 제도에 대
Ⅰ. 연암 박지원의 일생
박지원(朴趾源)(1737˜1805 조선 정조 때의 문인, 학자. 호는 연암(燕巖)이다.)은 대표적인 조선 후기 실학자의 한 사람이다. 실학은 유학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던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근대지향적이고 민족적인 성격의 개혁론으로서 종래의 주자학 일변도의 사상경향과는
4)『장자』의 영향
최근 연구로 미루어보아 연암의 열하일기(熱河日記)는 상당한 부분에서 『장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때문에 연암(燕巖)과 『장자』를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데 장자에 대한 연암의 관심을 도강록(渡江錄)에서 먼저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관심의 바탕에는 당
9) 마장전
방경각외전에 실린 마장전은 유생들의 위선적 교우 풍자를 주제로 삼고 있다. 마장전에서 하층민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광통교 위에서 벗과 사귀는 법을 논하면서 상층민이 말거간꾼들 이상으로 술수를 써서 벗을 사귐을 비판하였는데, 마장전은 이러한 모습을 화자가 관찰하는 형식에 의
Ⅰ. 들어가는 말
박지원이 살았던 18세기 조선사회는 전 시대와는 확연히 달랐다. 17,8세기에 이르러 조선사회는 도시와 농촌에 걸쳐 커다란 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이는 봉건사회의 구조나 이를 떠받치고 있던 이념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사회 경제적 변모는 그 구성원들의 기분이
우상전> 일곱 작품만 전해진다. 박지원은 총명하였으나 혼탁한 정치적 현실과 양반사회의 타락을 혐오하여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고 29세의 나이에 과거에 응시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그 후 재야의 선비로 지내면서 문학 창작과 학문에만 전념했다. 30세에 실학자 홍대용에게 자구의 자전설(自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