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북 3진에 웅거하였으며 ‘河北의 舊事’ 라고 하여 자신들만의 영역을 만들고 反唐적인 태도를 공공연하게 나타내었던 것이다. 이후 각지의 藩鎭은 차례로 唐朝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반역 번진화 되었으며 이에 대해 당 憲宗의 개혁으로 일컬어지는 일련의 唐 王朝의 대응책이 있었던 것이다.
◎ 유종원柳宗元 ◎
하나!) 유종원의 생애
대종(代宗) 대력(大曆) 8년(773)에 태어나 헌종(憲宗) 원화(元和) 4년(819)에 사망했다. 자는 자후(子厚)이며, 유주자사(柳州刺史)를 지냈기에 유유주(柳柳州)라 부른다. 원래 하동(河東 : 지금의산서 영제현(山西 永濟縣)) 사람이었으나, 부친이 전란을 피해 오(吳)로
憲宗) 원화(元和) 4년(819)에 사망했다. 자는 자후(子厚)이며, 유주자사(柳州刺史)를 지냈기에 유유주(柳柳州)라 부른다. 원래 하동(河東 : 지금의산서 영제현(山西 永濟縣)) 사람이었으나, 부친이 전란을 피해 오(吳)로 옮겨와 오군(吳郡)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21세 때 시가(詩
憲宗(헌종)이 불골을 맞이하고 모든 사찰이 차례대로 그것을 맞아 공향하게 한 것은 백성들이 “정수리에 향을 불사르고 손바닥에 기름을 부어 불을 붙이는 등의 신자의 고행을 행하고, 수백 수입이 떼를 지어 의복을 벗어내고 돈을 모아서 시주함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고, 서로가 본받아 오직 늦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