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傘(일산)을 기울이고, 호위하는 병사들의 검은 창과 붉은 깃발, 명사길로
아! 순찰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삭방지역 백성들의 재물을 보호해주니, 백성들은 正道(정도)를 본받아 새 기풍을 일으키도다!
아! 왕의 德化(덕화)가 中途(중도)에 일어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제 2
日傘)의 바람에 희어지고, 배가 요령 소리에 커지며, 방에는 기생이 귀고리로 치장하고, 뜰에 곡식으로 학(鶴)을 기른다. 궁한 양반이 시골에 묻혀 있어도 무단(武斷)을 하여 이웃의 소를 끌어다 먼저 자기 땅을 갈고 마을의 일꾼을 잡아다 자기 논의 김을 맨들 누가 감히 나를 괄시하랴. 너희들 코에 잿
日傘)을 펴고 비를 근근히 가리며 살 정도로 청빈하였는데, 조선 후기 실학자인 지봉(芝峰) 이수광(李晬光)이 이곳에 작은 집을 짓고 당호를 비우당(庇雨堂)이라고 하여 청빈한 삶의 중요성을 알렸다고 한다. 이에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청빈의 정신을 살려 다리 이름을 비우당교라고 하였다. 복원된
日傘をさした田舎の娘らが
(양산을 쓰는 시골의 아가씨(딸들)가)
着かざって唄をうたっている
(옷을 차려입고 노래를 부른다)
大きなまるい輪をかいて
(크고 둥근 원을 그리면서)
田舎の娘らが踊をおどっている
(시골의 아가씨가 춤을 춘다)
告げてうたっているのは
(알려
Ⅰ. 서 론
연암 박지원은 조선후기 실학자로서 열하일기 작품이 연상된다. 그는 조선 후기의 문신, 실학자이자 사상가, 외교관, 소설가이다. 관은 반남(潘南), 자는 미중(美仲) 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이고,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1765년 처음 과거에 응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