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발표 목적
이 발표는 대학생이 왜 구소련내 한인들을 이해해야 하는가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88년 올림픽 이후 활발해진 교류로 방송 매체에서 그들을 간간히 접하기는 하지만 그들에 대한 이해는 피상적인 수준이었다.
그들을 알아야한다. 그들이 과거에 왜 이주했고 어떻게 이주했는
까레이스키’라고 하며 고려족 또는 고려 사람이라고도 한다.
- 한국인들이 러시아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863년(철종 14)으로, 농민 13세대가 한겨울 밤에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서 우수리강 유역에 정착하였다. 이어 1865년(고종 2)에 60가구, 그 다음해에 100여 가구 등 점차 늘어나 1869년에는 4,500여 명
화면 가득 유화그림이 보인다. 웃음을 잃어버린 얼굴들, 회색톤의 물감, 어지럽게 흩어진 촛불의 모양 등이 보인다. 신순남 화백이 그린 '레퀴엠'이란 제목의 작품이다. 그는 누구길래 왜 이런 그림이 그렸을까? 그는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니꼴라이 세르게이예비치라는 까레이스키다.
1937년 스탈린시
까레이스키
Korea(고려) + people(사람)의 합성어
(1) 연해주로의 이주
· 1863년 연해주 포세트 지역 한인 13가구 이주 최초 기록
· 1867년 185가구 999명으로 증가
· 1869년 한반도 북부 대기근으로 이주 급증.
· 1888년 조-러 통상협정 체결, 이주에 대한 정식규제 시작
· 1902년 한인 이민자 수 32,380명
고려인
까레이스키라고 불렀는데, 이것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고려 사람이 된다. 연해주의 한인들은 스스로 조선사람, 고려사람이라고 불렀는데 이후 고려사람으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유의할 점은 고려인 스스로가 부르는 말은 “고려 사람”이라는 점이라는 것이다.
위와 같이 연해주 지방에서 상당한
까레이스키들은 그 척박한 땅에서도 벼농사를 일으켰으며, 한민족의 문화를 이어나간다. 이런 근현대의 인적교류 외에도 고려의 인쇄기술의 흔적이 이란에 남아있으며, 터키에는 태극문양이 담긴 도자기까지 남아있다. 사람이 길을 통해 이동했으며 그 사람과 함께 이동한 문물들이 오늘날의 문명의
까레이스키라고 하며, 고려, 고려 사람이라고도 부른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 극동 지역에 대부분 분포하고 있으며 중앙아시아 지역은 약 350,000명 정도, 연해주에 약 40,000명, 사할린 주에 약 36,000명, 캄차카에 약 5,000명 등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전역에 거주하는 고려인은 총 50만 명
재이주 혹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러시아 및 독립국가연합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를 이른다. 그들은 러시아어로 까레이스키로 불리며, 그들 스스로 조선인이나 한국인이 아닌 고려인이라 부르고 있다. 이렇게 부르는 데에는 구소련 거주 한인들이 스스로 꼬레 사람이라 부른 연유에서다.
1. 저작권 침해란?
저작권의 침해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그 저작물의 복제, 배포, 공연 등의 행위를 하고 그러한 행위가 ‘정당한 인용’등의 예외에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타인의 저작물과 완전히 동일한 사본(dead copy)을 만들어서 이용하는 경우에는 저작권침해여부의 판단이 비교적 용이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