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혜는 철조망에 목을 매어 자살을 하고 그의 자살로 극단적 이데올로기 대립에서 비롯된 전쟁의 광폭성이 인간의 존엄성은 물론 생존권조차 유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②이데올로기의 허구성
아까 그 노파의 눈·손·입, 그것은 그 귀를 먹으려고 하는 눈이고 손이고, 입술의 꼬물거림이었다
2.「요한시집」의 열쇠, 토끼우화
장용학은 스스로 창작한 우화를 서두에 배치하여 우리가 그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토끼우화는 작품의 주제를 암시하는 상징구조로 견고한 논리를 갖추고 있는데, 우화 속에 나타난 상징으로 이루어진 몇 개의 뜻을 풀면 글이 간결하고 명확
누혜 어머니를 찾아간다. 그녀의 얼굴은 60년 만에 처음 든 흉년이었다. 그녀는 고양이가 잡아다 주는 쥐로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고, 동호는 그 모습에 절망한다. 노파는 어쩌면 동호 때문에 죽고, 그 현장을 목격한 고양이가 파란 눈을 하고 동호를 본다. 동호는 그 눈 속에 누혜가 켜 있는 것만 같다. 누
누혜를 만났고, 누혜는 자살을 했다. 반공 포로로 수용소 생활에서 풀린 나는 누혜 어머니가 있는 산속의 하꼬방에 찾아간다. 하꼬방에 지나지 않는 삶을 유지하고 있는 중풍 걸린 누혜의 어머니는 고양이가 잡아 온 쥐를 먹으며 목숨을 연명해 왔다. 나는 쥐를 빼앗아 고양이의 면상에 던지고 노파 손
누혜와 동호라는 두 인물이 나온다. (앞으로 나오는 해석은 『요한시집』을 읽고 내 나름대로 해석한 것으로, 잘못 해석한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니 이 점 양해를 구한다.)
누혜는 유서를 통해 보건데 전쟁 전부터 자유와 다른 무언가에 대한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 고민까지는
Ⅰ. 전후세대 소설의 이해
한국의 현대 소설은 식민지시대와 해방기, 전후시대의 구분에 따라서 소설 방법뿐만이 아니라 주제가 다르게 나타난다. 식민지시대의 소설은 개인의 삶이 민족 전체의 삶과 관련을 맺고 있는 곳에서 리얼리티를 찾고, 해방기의 소설은 민족 문제에서 오는 고통을 개인이
서론
“관념 소설” 작가라고 불리는 손창섭과 더불어 1950년대의 대표작가인 장용학은 마치 공식인냥 “장용학의 소설은 난해하다” 라는 선입견이 있는데다 “관념적 요설”이니 “소설미달”이니 하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으로는 지식인 소설의 계보에서 전후 문학적 특질을 지니는 것으로
장용학의 『요한 시집』을 읽고..
얼마 전, 이라크 전쟁 파병 찬반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울 때 일이다. 나에게는 한 살 아래인 남동생이 있는데 그 때 그 애는 최전방 육군 부대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었다. 군대에 입대한지 갓 일년이 지나 상병을 달았을 때, 어느 날 걸려 온
《요한시집》의 저자 장용학은 1921년 4월 25일 함경북도 부령에서 출생하였다. 함경북도 경성의 경성중학을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1942년 와세다대학교 상과에 입학하였으나 1944년 중퇴하였다. 8·15광복 후 귀국하여 청진여중 교사로 지내다가 1948년 월남하였다. 월남 후 한양여고·무학여고 교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