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향가(신라시대) 도솔가의 배경설화
이 노래는 유사 권 5 월명사 도솔가조에 실려 있다. 경덕왕 19년 병자 4월 초하루에 두 개의 해가 나타나서 10일이 되도록 없어지지 않았다. 일관이 아뢰기를 "인연이 있는 스님을 청하여 散花功德을 지으면 재앙을 물리치리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제단을 조원
Ⅰ. 신라시대 향가 도솔가의 배경설화
경덕왕 19년 경자(庚子, 760) 4월 1일에 두 태양이 나란히 나타나 열흘 동안이나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일관(日官)이, ꡒ인연이 있는 중을 청해 산화(散花)공덕을 드리면 그 재앙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ꡓ라고 아뢰었다. 그래서 조원전(朝元殿)에 불단을
도솔가’를 지어 태양의 괴변을 물리치고, 죽은 누이의 제사를 지내는 ‘제망매가’를 통해 우리 역사 문화의 전면에 문화인으로 나타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소략한 기록이지만 월명은 통일 신라대의 문화의 세기에 살면서 풍류인과 문화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 가객이었다. 그를 비
Ⅰ. 서 론
향가는 순수한 우리 글로 표현되지 못하고 향찰(鄕札) 및 이두(吏讀), 곧 한자(漢字)의 음(音:소리)과 훈(訓:새김)을 빌어서 표기되었다. 전래 문헌에 의하면 향가의 뜻은 사뇌가(詞腦歌) ․도솔가(兜率歌) 또는 국풍(國風) ․자국지가(自國之歌), 즉 국가(國歌), 신라시대 고유의 노래,
Ⅰ. 통일신라시대의 향가 - 도솔가
1. 도솔가의 원문
今日此矣散花唱良
巴寶白乎隱花良汝隱
直等隱心音矣命叱使以惡只
彌勒座主陪立羅良
2. 도솔가의 작품풀이
도솔가는 삼국유사에 실린 향가들 가운데 매우 독특한 위치에 있다. 다른 노래들에서는 볼 수 없는 해시(解詩)가 이 노래에는 붙어
Ⅰ. 신라시대의 향가 도솔가
신라 유리왕 5 년에 지었다. 작자와 가사가 전해지지 않았다.
(儒理王) 五年....是年 民俗歡康 始製도率歌 此歌樂之始也
(유리왕) 5년. 이 해에 민속이 환강하여 비로소 도솔가를 지으니, 이것이 가악의 시초가 되었다. 그러나 나라를 편안하게 하자는 의도에서 부른 `두릿
Ⅰ. 향가 도솔가(통일신라시대)
1. 도솔가의 원문
今日此矣散花唱良
巴寶白乎隱花良汝隱
直等隱心音矣命叱使以惡只
彌勒座主陪立羅良
2. 도솔가의 작품이해
월명사가 경덕왕의 하명을 받고 도솔가를 짓게 된 제작동기는 두 해가 나란히 나타나서 열흘 동안이나 없어지지 않자 그 재앙을 물리
도솔가, 또는 국풍, 자국지가라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국가(나라의 노래), 신라 시대 고유의 노래, 동방 고유의 노래라는 뜻이다. 국문학자들은 좁은 뜻으로는 '신라의 가요' 또는 '고향의 노래' 등 여러 가지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말로 된 노래라는 뜻에서 향가라고 불렀다
도솔가를 짓게 된 전후사를 서술한 뒤에 이어 소개된 것이다. 즉 말하기를 월명이 또 일찍 죽은 누이를 위하여 제를 올릴 때 향가를 지어 제사 지냈더니, 홀연히 광풍이 일어 지전을 날려서 서쪽으로 향하여 없어졌다. 향가 중 가장 서정성이 높은 월명사의 작품이다. 또한 이별의 슬픔을 만남의 기약k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