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망매가의 작품이해
이 노래는 유사 권 5 월명사조에 도솔가를 짓게 된 전후사를 서술한 뒤에 이어 소개된 것이다. 즉 말하기를 월명이 또 일찍 죽은 누이를 위하여 제를 올릴 때 향가를 지어 제사 지냈더니, 홀연히 광풍이 일어 지전을 날려서 서쪽으로 향하여 없어졌다. 향가 중 가장 서정성이 높은
시대적으로도 가까운 것이려니와 거기에는 모두 역시(譯詩)가 붙어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것이었다고 평할 수 있다. 반면 그와 반대되는 나열 방식을 택한 양주동식 태도는 다분히 문학사적 관점이 배어 있는 것이라고 해야겠다.
또 하나 지적할 것은 제망매가까지를 포함하여 월명사의 향찰 표기는
향가라 말할 수 없거니와, 공간적으로도 우리말 시를 모두 향가라 지칭한 기록도 없고, 상고 사회, 고구려, 백제, 조선, 한국의 우리말 시들을 모두 향가라 부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하여 학술적 용어로서 향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정형시로서 삼국시대 말엽에 발생하여 신라의 우리말 시와 고려
시대 말기부터 고려 초까지 유행하였던 한국 고유의 定型詩歌를 말한다.
2.2 향가의 명칭에 대한 견해
⑴ 초기 ▶ 唐樂 또는 漢詩歌에 대해 우리 시가를 낮추어 부르는 말. 신라통일 후 사대 주의사상에 기인하여 발생한 당악에 대한 자국의 노래에 붙여진 명칭
⑵ 근래 ▶ 자기비하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