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문제, 동부유럽문제, 전후의 새로운 국제연합문제, 태평양전쟁과 극동문제 등이 중요한 관심거리들이 논의되었다. 이중 2차 대전의 전범과 독일의 처리문제는 그 회담에서 논의된 가장 중대한 문제로 여겨졌는데 그 이유는 당시 유럽에서의 독일 세력의 처리문제, 즉 독일의 분할에 관한 문제, 전
독일에서도 '환경수도'로 유명한 프라이부르크는 70년대 핵발전소 설립 반대를 시초로 지금까지 많은 환경운동을 펼치고 있고, 다른 도시보다 훨씬 먼저 환경청을 설립하여 자연 그대로를 간직하고 보호하는 등 '흑림'으로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에 비해 우리 나라는 환경문제가 다른 사람의 문제
1) 전후 독일 처리 문제 – 가혹한 정책
독일 제국의 완전한 해체 - 공중분해
산업 역량 제한
나치 부역자 청산
공동점령의 실패 요인
독일의 분할
중부 유럽의 힘의 공백
전시 연합국들의 이념 갈등
배상금 논쟁
독일 경제와 서구 경제의 상호 의존성
점령초기 독일의 공동점령 정책
통일 독일의 수치, 신나치주의와 극우폭력
신나치주의자들로 NPD 당을지지하는 4000명의 인파가 전국에서 모여 거리행진을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듯하다. 요제프 압둘라는 당시 여섯 살이었다. 그 귀여운 아이는 체코 국경 부근에 있는 제브니츠라는 작은 마을에 살았다.
독일문제와 냉전구조가 서유럽통합의 추진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이었던 것이 다. 그런데, 이제 독일이 통일되고, 현실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면서 기존의 서유럽통합은 그 의미를 잃 었고, 이제 실질적인 유럽통합을 이룩해 낼 수 있을 것인지에 문제의 초점이 맞추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