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궤 도서들 처럼 조선왕조의 국가적 상징성을 지닌 것들이라면 매매나 교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원생산지로 되돌려져야 한다.
파리 국립도서관의 한국 외규장각 도서들은 반출과정부터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이 많다.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입한 사건(丙寅洋擾) 자체의
의궤(儀軌)를 비롯해 총 1000여권의 서적을 보관하였다. 프랑스의 도서 침탈이 있던 당시 외규장각의 도서 현황은 다음과 같다.
종 류
수 량
비 고
왕족신분표지물
19 점
조선조 역대 왕이 직접 쓴 임금이 몸소 짓거나 만듦, 또는 그런 글이나 물건
어제(御製)나 어필물(御筆物)
61 점
기타 족
화력 감당할 수 있는 이점 없었음
의 궤 란?
조선왕조시대에 왕실 및 국가의 각종 행사에 대해
발의 및 준비 과정, 의식 절차, 진행, 행사 유공자들에
대한 포상 등의 사실을 정리한 기록
파리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의궤들은
1630년(인조8) ~ 1849년(현종15)에 걸쳐 제작된 것
2. 의궤(儀軌)란 무엇인가
(1) 의궤의 정의
의궤란 조선시대에 왕실이나 국가의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기록으로 주로 훗날에 참고하기 위한 목적에서 제작되었다. 의궤는 의식과 궤범이라는 뜻이다. 즉 중요한 의식이 있으면 그것이 본보기가 되어 국가 의식을 치를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든 것이
외규장각의궤 조사연구> 외교통상부 2003
이때 규장각은 그 이름대로 역대 왕의 글과 책을 수집, 보관하기 위한 왕실 도서관의 역할을 하였다. 정조는 여기에 비서실의 기능과 문한(文翰) 기능을 통합적으로 부여하고, 과거 시험의 주관과 문신 교육의 임무까지 부여하였다. 규장각은 조선 후기의 문운
의궤 도서란?
조선왕조시대에 왕실 및 국가의 각종 행사에 대해 발의 및 준비 과정, 의식 절차, 진행, 행사 유공자들에 대한 포상 등의 사실을 정리한 기록이다. 파리 소재의 위 의궤들은 제작시기가 1630년(인조8년)에서 1849년(현종15년)에 걸친 것들로 조사되었다. 현재 알려진 가장 오랜 의궤는 160
Ⅲ. 이론 적용
1. 양면게임구조
외규장각 반환 협상은 `양면게임구조`로 설명될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1998년 ASEM 회의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의 정상회담 과정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 회담에 의해 협상당사자에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이는 프랑스측이 자국 내의 전문가
Ⅰ. 서론
문제의 제기
우리나라는 과거 수많은 외세의 침입에 의해 많은 문화재가 외국에 강제로 유출되었다. 이에 그동안 문화재 환수를 위하여 다각도의 노력이 있었으나 그 성과가 미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프랑스로부터의 외규장각의궤 반환으로 국가적 관심이 모아지고, 문화재청에서
외규장각 도서는 어람용 의궤 도서들이었다. 의궤란 국왕, 왕비, 세자 등의 책봉, 왕실의 결혼, 능원 조성 및 이장 등 왕실과 국가에서 거행한 주요행사에 대한 준비 과정, 의식 절차 및 진행, 행사 유공자들에 대한 포상 등의 사실을 그림과 기록으로 세세하게 남긴 왕실 의례집으로서 조선왕실 기록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