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규경의 학문형성 배경
1) 가학(家學)의 전통
이규경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그의 집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조부인 이덕무와 아버지 이광규는 모두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중인 신분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신병주, 『조선중,후기 지성사 연구』, 새문사, 2007, p.315
아마 오늘날
최한기의 생애
혜강 최한기(惠岡崔漢綺:1803~1877)는 실학사상이 개화사상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살았다. 서얼 출신인 이규경과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와 사귀었다는 사실정도가
알려져 있을 뿐이다. 최한기의 15대조상은 세조 때에 영의정을 지낸 최항(崔恒)이라
고 하는데, 그 이후에는 거의 몰락하여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이 나왔다. 교육인적자원부, 《고등학교 국사》, 교학사, 2007, p.305.
… 박세당은 색경을, 홍만선은 산림경제를, 서호수는 해동농서를 저술하여 농업 기술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19세기에 서유구는 농업과 농촌 생활에 필요한 것을 종합하여 임원경제지라는 농촌 생활 백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숙종의 인현왕후 민씨의 폐위를 경계하기 위해 지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다. 김만중이 1689년 숙종이 왕후인 민씨를 버리고 궁녀인 장소의를 왕후로 삼은데 대하여 상소한 탓에 남해로 귀양살이를 가게 된 사실을 고려할 때 소설 「사씨남정기」의 창작동
이규경이 말한 바 있듯이 ‘어머니의 쓸쓸함을 위로하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지었다.’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작품의 주제나 그의 신변적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유배지에서 외롭게 홀로 지내면서 병마에 시달리는가운데 현실에 대한 회의, 나아가서 성리학적 지배
이규경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 서적에 '공기'에 대한 기록이 나오고 있어 그 유래가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 공기놀이는 그 기본 형식에 큰 변함은 없지만 놀이 이름이 지방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데, 경상북도에서는 '짜게 받기', 경상남도에서는 '살구', 전라북도
이규경은 “오늘날의 정과정 계면조는 애상에 젖어서 사대부로서 배워 익히지 않는 이가 없다” 고 하였다. <정과정>에 대한 조선조 사인들의 반향을 알 수 있는 말이다. 시가 지어진지 600여년이 지난 18세기 후반에도 고려시대의 노래 <정과정>이 조선 사대부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인기가 있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