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 사상사] 한국여성신학(형성과 전개, 구체적 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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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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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여성신학
한국여성신학의 형성과 전개 이숙진, “여성신학의 최근 동향”, 「기독교사상」, 대한기독교서회, 2009.
서구 여성신학이 한국 사회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 그렇지만 서구 여성신학이 소개되기 이전에도 이미 한국 기독교 여성들은 여성의 경험이 배제된 성차별적 신학과 교회의 관행에 대해 나름대로의 저항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서구 여성신학의 국내 수용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1968년에 조직된 ‘교회여성연합회’ 이 단체는 여성신학 관련 프로그램을 국내 최초로 개설하였는데 이 강좌를 통해 서구 여성신학을 접한 교회여성들이 신학대학 안에 여성신학 개설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장 여신도회 전국연합회는 한국신학대학 교과과정에 여성신학 과목을 설정하여 남녀 학생이 이수케 할 것, 목회 실습과정에 여신도회 분야를 포함시켜줄 것, 교회 각 분야에 여성이 고루 참여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1978년 총회에 청원하였다.
이다.
1980년대에 접어들자 서구 여성신학의 이론적 성과들이 번역을 통해 소개되고 1980년대 초에 번역된 대표적인 서구 여성신학 서적은 다음과 같다. 레티 러셀, 안상님 역(1979) ; 김상화 역(1980) ; 손승희 역(1982) ; 김상화 역(1983) ; 로즈마리 류터, 손승희 역(1980) ; 서남동 역(1982) ; 안상님 역(1985) ; 이디드 딘, 이우정안상님 역(1981) ; 몰트만 벤델, 김희은 역(1982) ; 할케스, 안상님김희은 역(1983) 등.
여성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단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1980년 초교파적 성격을 띤 한국여신학자협의회(이하 여신협) 1978년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아시아교회여성연합회’에 요청하여 신학을 공부한 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비로 당시 2천 5백 달러(1,207,500원)를 보조받아 ‘교회의 민주화’라는 주제하에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1979년 1월 22-23일에 걸쳐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이 모임이 ‘한국여신학사협의회’(가칭)의 발족으로 이어졌으며, 1980년 4월 20일 기독교회관 대강당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한국여신학자협의회’라는 공식 명칭으로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의 발족을 시작으로 한국여성신학회(1984), 기독여민회(1986), 기독교여성평화연구원(1989), 아시아여성신학교육원(1989), 여성교회(1989) 등이 잇달아 등장하였다.
여신협이 성차별적 교회문화의 개선과 사회적 문제의 해결에 많은 관심을 보인 반면, ‘한국여성신학회’는 여성신학의 이론적 토대를 확립하는데 큰 비중을 두었고, 공동학회에 가입함으로써 비로소 여성신학의 제도권 진입이 가능해졌다. 그 이후 한국여성신학회는 (1994), (1995), (1997), (2001), (2007) 등의 무크지 발간을 통해 여성신학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이론적 작업은 이화여대와 성공회대학 부설 여성신학연구소를 통해 더욱 심화되었다. 여신협의 교회문화개혁운동과 한국여성신학회의 이론적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민중교회 여성목회자, 기독여성 노동운동가, 진보적 청년이 주도한 ‘기독여민회’가 출범하였다. 이 단체는 성서의 ‘민중해방’ 전통을 통해 ‘민중여성’의 삶의 자리를 새롭게 해석하는 방식으로 민중신학과 여성신학의 접목을 시도하였다.
한국여성신학은 해외 기독교여성들과의 교류에도 적극적이었다. 아시아기독교여성문화연구원(1999)의 모체가 된 아시아여성신학교육원(1989)은 한일 여성신학포럼 등을 통해 아시아여성들과의 연대사업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1990년대에 접어들자 거시적인 사회변혁의 프로그램보다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여성문제에 강조점을 두는 여성운동이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1989년에 여성신학의 확산과 미국 여성교회 운동의 영향을 받아 ‘여성교회’ 이 교회는 기존 교회의 남성중심적 예배제도나 성직자 중심의 위계구조와 달리 교회구성원들이 평등하게 어우러질 수 있는 실험적 교회 공동체 모델을 제안하였다. 여성교회는 남자와 여자를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동등하게 창조하신 하나님, 억눌린 사람들 특히 여성들을 해방시키고자 이 세상에서 사명을 다한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눌린 자들의 편에서 그들의 고난을 이기게 하고 여성들을 깨우치게 하여 하나님 뜻을 이루게 하는 성령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다. 여성의 경험을 철저하게 반영하는 ‘여성주기도문’의 번역 작업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하였다. 여성이 주도하는 이러한 신앙공동체는 한국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예배형식에 적극 도입하는 등 대안적 예배형식의 개발에도 노력하고 있다.
가 설립되었다. 이 시대의 여성신학은 여성이 주체가 되는 ‘여성교회’의 설립을 통해 여성해방을 추구하는 동시에 기성교회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성차별 구조를 변혁시키기 위한 작업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마침내 여성안수 허용이라는 실질적 성과로 귀결되었다.
2000년대 접어들어 한국교회의 주요한 이슈로 떠오른 것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기독교성폭력상담소’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여성의 삶을 근원적으로 왜곡하는 핵심 요인임을 부각시키면서 교회 내 성폭력 문제를 적극적으로 이슈화하고 있다. 교회안의 성폭력은 ‘사건의 은밀성’과 ‘사태의 빈발성’으로 인해 교회여성 인권의 사각지대로 존재해 왔다. 따라서 이 문제를 여성인권 수호의 차원에서 접근함으로 한국 교회의 왜곡된 성의식과 성문화를 바로잡으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그동안 터부시 되어왔던 여성의 성의 경험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이 신학적 작업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1999) 및 (2000) 등이 대표적인 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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