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국가경영 세종의 후사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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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종대왕의 국가경영 세종의 후사 문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하지만 세종이 붕어 한 후 10년도 안되어 왕이 3번 바뀌는 혼란스러운 시기가 찾아옵니다. 게다가 문종 과 단종에 뒤를 이은 세조는 세종과 상반되어온 정치를 펼쳐 패도정치로 일관하고 맙니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서 세종이 재위하면서부터 병약한 세자 문종 , 그리고 문종이 죽은 후 왕위에 오른 단종의 나이는 불과 11세 .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왕권의 불안정한 기반은 결국 쿠데타 와 비슷한 정부전복이 시도되기 마련입니다.
세종은 재위 기간 동안 이러한 세자의 병약함을 너무 간과하고 있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과 문종 외에 세종의 2째 아들인 수양대군에 관한 처우에 관한 미온적인 처리가 이러한 결과를 야기 시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서 세종의 미온적인 대처를 했던 이유를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담았습니다. 참고문헌이나 논문을 인용하지 않았고 주로 제가 역사학을 공부하면서 가지고 있었던 의견을 담아냈습니다.
2-1.병약한 세자(문종)와 야심 많은 수양 대군(세조)
세자는 학문을 좋아하였고 학자(집현전 학사)들을 아끼고 사랑하였다. 그리고
세종을 도와 한글 창제에 기여한다.
하지만 문종은 세자시절부터 세자빈의 문제로 여러 번 곤욕을 치러,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세자빈이 3번이나 바뀌는 소동이 일어난다.
게다가 선천적으로 병약하여 자주 병상에 있어야했다.
수양대군은 서열상 장남인 문종에게 밀려 왕위에 등극할 수 있는 세자가 될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형인 문종이 건강히 좋지 않아, 세자 때부터 병상에 누워있는 적이 많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양대군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야심 많고 포부가 큰 수양대군은 아버지인 세종이 자신에게 세자의 자리를 넘겨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충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