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의 세계 발표안 문종 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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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왕조실록의 세계 발표안 문종 단종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단종은 조선의 제 6대 임금으로 문종와 현덕왕후 권씨의 외아들입니다. 생모 현덕왕후 권씨는 1441년(세종23) 7월 23일 단종을 출산하고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단종은 1448년(세종30) 세자로 책봉되고 1452년 5월 18일, 12세의 나이로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위에 즉위하나 1453년(단종1) 계유정난으로 인해 정권을 잃고 1455년 마침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양도하기에 이릅니다. 1454년 1월 수양대군의 강권에 못 이겨 부친 문종의 3년상이 끝나기도 전에 정순왕후 송씨와 혼인한 것도 결국에는 수양대군 자신이 더 빨리 왕위에 오르기 위함이었습니다.
왕위를 양도하고 상왕으로 물러난 단종은 1456년(세조2) 6월 성상문 등이 주축이 된 상왕 복위 사건으로 인하여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귀양가게 되고 같은 해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단종은 다시 서인으로 강등당합니다.
1457년 10월 24일 마침내 세조가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나 스스로 목을 매 죽었다고 세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종은 1681년(숙종7) 사후 224년 뒤에 노산대군으로 복위되었다가 1698년(숙종24)에 왕으로 복원됩니다.
2. 계유정난(癸酉靖難)
계유정난의 원인은 단종이 미성년이며 수렴청점할 대비도 없는 상황에서 즉위하여 국가권력이 문종의 유언을 받은 황보인, 김종서 등의 의정부 대신들에게 넘어가게 된 것에 있다고 합니다.
의정부 대신들이 수렴청점하는 대비의 역할을 하게 됨에 따라 정계의 세력 판도는 종친과 신료 세력으로 나뉘게 됩니다.
종친 세력은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으로 양분되고 신료 세력들 또한 의정부 대신과 집현전 학사 출신이 소장학사 로 나뉘게 되어 정국은 두 종친의 경쟁이 치열해 짐에 따라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수양대군은 서열이 높고 야심이 가득 찬 인물로 의정부 대신들에게 견제 당하고, 의정부 대신들은 안평대군을 지지하여 종친 세력의 분열을 시도합니다.
이런 불안정한 판국에 황표정치가 시행되어 왕도 정치가 약화되고 대신들의 권력이 강화되어 이는 결국 수양대군에게 명분을 주게 됩니다.
황표정치란 수많은 관리를 임명하거나 파면할 때 왕이 누가 누군지 알수 없으므로, 친재를 올릴때 의정부의 세정승(영의정 황보 인, 좌의정 김종서, 우의정 정분)이 이름 위에 노란 표시를 해서 올리면 단종이 그대로 결재하였기 때문에 황표 정치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이는 조선왕조의 왕도정치가 약화되고 대신들의 권력이 강화되는 계기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