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환경 그리고 디지털 문화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존재 속에서 어떤 식으로 의미 해석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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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디지털 환경 그리고 디지털 문화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존재 속에서 어떤 식으로 의미 해석될 것인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7년 전 컴퓨터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당시 컴퓨터는 286이었다. 흑백화면에 DOS라는 운용체제를 사용하는 컴퓨터였다. 내장된 하드디스크가 없어서 5.25인치 플로피 디스켓으로 부팅을 해야 했다. 부팅이 되는 속도도 느렸다. 또 킬로 바이트나 몇 십 메가 바이트 정도가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의 한계였다. 당시는 이론으로만 배웠던 기가 바이트나 테라 바이트가 지금은 일상적인 용량이 되어버렸다. 컴퓨터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고 나는 그 발전의 속도에 발맞추기가 힘들었다. 예전에 썼던 DOS를 버리고 윈도우즈를 다시 배워야했고,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인 GW-Basic도, D-Base나 Lotus도 파워포인트, 엑셀로 모두 대체 되었다. 중학교로 진학했을 때, 옆 중학교에 한 학생이 팜탑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은 그때 당시의 팜탑 컴퓨터의 성능을 훨씬 능가하는 스마트 폰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
디지털의 빠른 진화로 인해 삐삐나 다이얼식 전화기 등과 같은 많은 무용지물들이 생겨났다. 인간도 이 진화의 속도에 발맞추지 못하면, 퇴물이나 컴맹, 폰맹이 되어버린다. 디지털이 문화가 되어버린 이상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문화의 바깥으로 쫓겨나고 만다. 하지만 문화란 또 파급력이 큰데다 우리의 외부를 단단히 구성하고 있어서 인간들은 어떻게든 적응해 나간다.
나는 디지털의 빠른 진화를 어느 정도 직감은 하지만 그것을 정확히 꿰뚫고 있지는 못하다. 나는 왜 그런 디지털의 빠른 변화를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디지털이 문화가 되어 어느새 나의 삶을 알게 모르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다양하고 복잡해진 문화 중에서 디지털이 그다지 나에게 관심을 끌만한 요소가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쩌면 ‘디지털’이라는 냄비에 갇힌 개구리인지도 모른다. 물의 온도는 점점 올라가지만(변화하지만)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서서히 상승하는 물의 온도처럼 ‘디지털’의 진화가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종의 위협은 가할지도 모를 일이다.
디지털의 범위는 너무나도 넓다. 그중 디지털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품으로 인터넷을 꼽고 싶다. 인터넷의 시작은 미군 내부의 인트라넷이었던 ‘아파넷’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PC통신이 주를 이루었고, 통신망의 발전으로 지금의 인터넷이 생겨난 것이다. 인터넷은 불과 십여 년 만에 우리의 삶 깊숙이 들어왔다. 인터넷이 활용되면서 그 안에 내재해 있는 문제가 이슈화 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의 만남으로 인해 개인이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 후 인터넷에 곧바로 업로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사진기자들이 하던 역할도 개인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기자정신마저 발휘하려는 데 문제가 있다. 여기에서 기자정신이란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것에 개입하거나 중재하지 않고 단순히 그 사건을 담는 데만 의미를 두는 것이다. 이것이 비단 디지털의 문제만이 아닐 수도 있다. 개인주의의 영향도 큰 몫을 할 테지만 그 결과물은 결국 디지털인 것이다. 그리고 그 디지털 자료를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것에도 큰 문제가 있다. 이런 문제는 몇몇 영화에서도 다루어진 내용이다. 가령 자신의 아내가 살해당하는 동영상을 촬영하고 자신의 아내를 도와주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복수를 한다는 내용의 한국영화『십억』이나 자신의 아버지가 죽는 영상을 촬영해 인터넷에 ‘스너프’ 스너프(snuff) - 스너프 영화 살인이나 잔인한 장면을 연출과 여과 없이 찍은 것. - 네이버 국어사전
필름으로 올려 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만들어버린 데 대한 아들의 복수를 다룬 영화인『킬 위드 미』도 이런 현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도 ‘기자정신’이 발휘된 무수한 동영상들이 인터넷에 흘러 다니고 있다.
인터넷이나 디지털 기기의 발전으로 공간의 한계는 사라져버렸다. 이런 환경으로 인해 사람들 간의 소통의 가능성은 더욱 넓어졌고, 폭도 확장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말부터 이어져온 ‘소통의 부재’라는 문제는 또 무엇일까? 디지털 환경 내에서의 소통이 간접적인 만남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흔히 말하는 넷 상의 익명성에 의지한 ‘가면’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상의 자신을 ‘아바타’라고 규정짓는다. 오히려 이 허구적인 스크린 인격이 내 진실한 자기에 더 가깝다고 한다면, 오히려 현실 생활에서의 자기가 내 진짜 자기의 폭력성이나 무분별한 윤리성을 은폐하는 가면이라면? 역설적이게도 나는 사이버공간에서 진짜 자기를 표출하게 해주는 허구 속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다. 라캉은 이를 ‘진실은 허구의 구조를 지닌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짜 자기는 무엇이며 가짜 자기는 무엇일까? 이를 규정짓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일까?
‘악플’이나 마녀사냥 등과 같이 인터넷에서의 윤리적 문제점은 많이 산재해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문제로 인해 ‘최진실 법’을 통과시키려 한 적이 있었다. 그럼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인터넷 사용에 적합한 윤리성을 갖춘 인간’을 규정해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인터넷 사용을 금지해야 하는가? 여기에는 윤리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자유에 대한 문제도 있다.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내에서 디지털 문화를 만끽할 수 있도록 하려면, 그것이 단순히 문화라고 해서 포섭되거나 장악될 것이 아니라, 항상 그 문제점이나 모순성을 깨달아가며 진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디지털은 하드웨어적으로도, 소프트웨어적으로도 많은 발전을 거듭해가고 있다. 이것은 인간 육체의 한계를 점점 더 확장해나갈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준다. 이렇듯 인간의 욕망이 디지털에 끝없이 투영되다보면 결국 나중에는 SF소설처럼 컴퓨터를 업그레이드 하듯이 인간 육체도 업그레이드를 하며 바꿀 수 있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참고문헌

네이버 백과사전
『HOW TO READ 라캉』- 슬라보예 지젝 지음, 박정수 옮김. 웅진 지식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