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사 토론문 향가 시대 문학 사뇌가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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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문학사 토론문 향가 시대 문학 사뇌가의 해석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향가시대 문학
1. 사뇌가의 해석
사뇌가를 향가와 동일한 것으로 볼 것인가, 아닌가? 사뇌가와 향가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끊임없이 행해져왔다. 아직 명확한 어떠한 근거도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학자들의 견해만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뇌가를 10구체 향가라고 정의내리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사뇌가’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사뇌가는 10구체 향가입니다.’라고 이야기한다면 그들의 이해를 빠르게 도울 수 있다. 사뇌가를 10구체 향가와 전적으로 동일하게 보기 어렵지만, 비슷한 구석이 많이 존재한다는 건 분명하다. 차사사뇌가의 제9구 첫머리에는 감탄사가 존재하는 등 10구체 향가와 공통된 특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분명 사뇌가와 향가의 비슷한 점은 많다. 그러나 근래 학자들은 이에 머무르지 않고 좀 더 심화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둘을 전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파악하지는 않는다. 학자들은 대체로 향가의 하위 장르로 설정하려는 면에서 동의하고 있다. 앞으로 보다 더 깊은 연구를 진행하고 양질의 자료를 수집한다면, 사뇌가의 장르적 논의 규명은 점차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잠정적인 정의에 그치지만 그때는 비로소 사뇌가의 정의를 내릴 수 있으리라 사료된다.
그렇다면 도솔가와 사뇌가의 관계는 어떠한가? 이것 역시 학자들 간의 의견이 분분하다. ‘도솔가’ 자체가 일연의 기록으로 남아있을 뿐, 현재 우리로서는 어떠한 구체적인 구절도 얻을 수 없다. 단지 유리왕대의 작품이라는 정보와 서정적 민요라는 사실만 알 수 있다. 고대문학에 대해 추측밖에 할 수 없는 이 시점에서 모호한 두 가지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여기서 우선적으로 사뇌가와 향가의 관계의 연구가 행해져야 한다. 사뇌가와 향가의 관계를 밝힌 후, 도솔가가 차사사뇌격으로 쓰였다는 기록을 참고한다면 도솔가의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 삼구육명의 해석
삼구육명의 해석 역시 자료 자체가 한계와 모호성을 띤다. 따라서 확고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매우 어렵다. 확실한 것은 삼구육명으로 하여금 향가의 형식 혹은 작시법을 규정했다는 사실이다. 향가의 형식이나 작시법을 규명하기 위해서 삼구육명에 대한 연구는 필연적이다. 자료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학자들은 ‘삼구’와 ‘육명’을 관련 체계로 볼 것인지, 아니면 별개 체계로 볼 것인지에 관한 다양한 견해를 펼친다. 학자들의 다양한 의견은 대체로 3연 6구의 형식을 의미한다는 것으로 수렴된다. 서정 시가는 신라의 사뇌가에서 고려의 속요로, 또 조선의 시조로 이어진다. 이때 필자는 시조의 출현이 속요라는 아버지 장르에 대한 반발이라 하였는데, 나는 이 입장에 대해 동의하지 못한다. 속요에 대한 반발이 시조라기엔 속요와 시조의 공통점이 분명 존재하고 내용적으로나 형식상으로나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뇌가의 삼구육명 양식이 시조의 삼장육구 양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부분은 동의한다. 아마 당대 사람들은 사뇌가의 삼구육명 양식을 수용하고 변용하여 삼장육구라는 시조 양식을 생성했을 것이다. 삼구육명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의견을 내진 못했지만 이것이 훗날 시조 양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3. 향가의 형식
향가는 불교의 영향을 받았고, 불교음악의 가락을 차용하였다. 쉽게 외울 수 있는 노래로 이루어져 불교전교의 기능을 담당한다. 그러면 10구체 향가로 알려진 안민가는 어떠한가? 안민가에는 임금, 신하, 백성의 바람직한 모습을 제시하여 태평한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뜻이 담겨있다. 이는 불교보다는 유교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안민가는 향가이지만 불교와 관련 없는 것일까? 이때 주목할 점은 안민가의 작자인 충담이다. 충담은 승려이다. 충담은 불교, 유교, 시를 짓고 노래하는 일 모두에 뛰어난 이상적 인물이었다. 결국 안민가 또한 불교의 큰 틀 안에 위치하고 있던 것이다.
4. 서동의 정체
서동설화는 유명한 4구체 향가이다. 이때 주인공 서동의 정체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다. 서동을 실존인물이라 보고, 백제의 왕이라고 하는 의견과 신라사람이라고 하는 의견, 그리고 종교적인 어떤 인물이라고 보는 의견 등이 있다. 한편 서동을 역사상 실존하지 않는 가공인물로 보기도 한다. 여기서 어떤 의견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신빙성 높은 삼국유사의 기록에 주목한다면, 어떤 의견이 가장 당위성을 지니는지는 알 수 있다. 신뢰도가 가히 으뜸인 삼국유사에 서동설화는 너무나도 명확히 나와 있다. 우리는 삼국유사에서 서동을 무왕이라 칭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필자 또한 서동을 무왕이라고 보았고, 현재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5. 처용의 정체
처용가는 8구체 향가이다. 다른 작품에 비해 처용가는 해독의 이론(理論)이 적은편이다. 종교신앙적 관점에서 처용을 무당으로 해석하여 무가적 속성이라는 점의 근거를 마련했다. 역사사실적 관점에서는 지방호족인 처용과 중앙호족인 역신의 갈등을 표현했다. 이때 흥미로운 의견은 처용을 이슬람 상인 중 한 사람으로 보는 것인데, 처용의 생김새를 묘사하는 구절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 묘사는 이슬람 계통 사람과 맞아 떨어진다. 당시 국제교역상 중심지인 울산에서 이슬람 상인과의 교류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의견도 충분히 가능성 있다.
한편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는 처용가가 오이디푸스의 모티브를 나타내었다고 본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데 이러한 구성에 착안하여 처용을 아들로, 역신을 아버지로 본다. 이때 처용은 오이디푸스와 다르게 모계의식을 극복한다. 처용은 여인(어머니)과 역신(아버지)을 보고 분노하지 않고 노래를 부른다. 이런 점에서 처용가는 모계의식을 극복한 부계의식의 완전한 승리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