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인재 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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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종의 인재 등용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세종의 인재 등용에 관하여
Ⅰ. 들어가며
세종이 인재를 발탁하는 요령은, 최종적으로 발탁할 때까지 비밀에 부치고 인재들 간에 경쟁심과 긴장감을 유발시켜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이는 신하들의 자발적인 열의를 이끌어내는 훌륭한 방법이었다. 또한 세종은 일회적인 목표 제시로 끝내지 않고, 끊임없는 사후점검을 통해 아랫사람들을 독려하였다. 그는 상급 관청과 하급 관청에서 점검과 잔소리에 지쳐서라도 일을 이행하게 만드는 임금이었으며, 부하들의 보이지 않는 목소리를 듣기 위해 내부 보고자들의 은밀한 비공식 보고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서도 세종은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사람을 다스렸고, 부국강병을 위해 적재적소에 인재를 투입하고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고양시키기 위해 늘 고민했다. 또한 왕실의 종친이라도 사사로이 특혜를 주는 경우가 없이 늘 공변되게 인재를 관리하였다.
Ⅱ. 본론
◎ 인재관리술과 인간경영능력
1) 인재를 발굴, 등용하는데 필요한 경영자의 안목
‘인물은 하늘이 내리고 인재는 사람이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세종은 수많은 경영자적 자질 중에서도 유독 인재관리술이 뛰어났다. 즉, 인재를 발굴하는데 있어서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들을 관리하는 능력 또한 빼어났던 것이다. 늘 핵심 인재 발굴에 관심을 가졌고, 등용한 인재에 대해서는 이들이 더 큰 인재로 성장하도록 모든 여건을 마련해주었다. 그 때문에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 및 국가 경영의 전 분야, 즉 역사, 지리, 도덕, 예의, 천문, 의학, 종교, 농사, 음악, 문화, 운학 등 모든 영역에서 조선의 르네상스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세종이 영의정 황희를 정승으로 등용한 사실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사실 황희는 이직과 함께 세종이 왕위에 오를 때 이를 반대하다가 귀양살이까지 했던 인물이다. 물론 부왕의 당부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인재를 등용하는데 있어서 세종의 넓은 도량이 빛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황희는 아직까지도 세종 시대 30여 년 동안 세종이 위대한 치적을 이루는데 많은 공헌을 한 명재상으로 남는다.
또 국가에서 주는 녹미만으로 생활하면서 평민들의 집과 같은 처소에서 살았던 맹사성 또한 세종이 등용한 인재이다. 맹사성은 대사헌을 거쳐 좌, 우의정을 지내면서 영의정 황희와 명장 김종서와 함께 국정을 이끌었다.
육진을 개척하여 우리나라의 국경을 두만강으로 확장시킨 지용의 명장, 김종서 또한 세종의 신하였다. 세종은 끝까지 신하를 신임하고, 신하가 하는 일이 모두 이루어질 때까지 오랜 세월을 참고 기다릴 줄 알았다. 세종은 ‘김종서가 없었다면 6진을 개척하지 못하였을 것이다.’라고 극구 칭찬하였으나, 김종서는 세종처럼 자기를 믿고 끝까지 밀어주는 임금이 없었다면 결코 6진 개척에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세종은 또한 천거제도를 적극 활용하였다. 변계량을 통해 천거된 훗날 집현전의 핵심인력들 신숙주, 성삼문, 하위지, 박팽년, 유성원, 이개, 최항, 이석형, 서거정, 김수온, 강희맹, 이승소, 성임 등은 본원적으로 보면 모두 세종의 인재등용이었다. IT의 숨은 보석 장영실도, 음악의 천재 박연 또한 그러하다.
2) 능력주의, 성과주의에 따른 인재관리
세종의 인사정책의 원칙은 능력주의와 성과주의였다. 왕실의 종친이라 특혜를 주는 일도 없었고 아비가 훌륭하다고 하여 아들에게 특혜를 주는 일도 제한하였다. 오로지 나라와 종사에 이익을 주는 작은 재주라도 가진 자라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었다. 세종 시대 능력주의에 근거한 발탁 인사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장영실이다. 장영실은 아버지가 중국에서 귀화한 원나라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기생이어서 신분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세종은 장영실이 과학기술 분야에 뛰어나다는 보고를 받고, 그를 대궐로 불러 천문 관측에 대해 토론을 벌이며 그의 능력을 검증하였다. 그 후 곧바로 장영실의 비상한 능력을 알아보고 권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정5품인 상의원이라는 파격적인 인사조치를 단행한다. 세종실록을 살펴보면,
안숭선에게 명하여 영의정 황희와 좌의정 맹사성에게 의논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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