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문화-놀이 단지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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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문화-놀이.. 단지 놀이
“너 빨리 컴퓨터 끄고 공부 안 해?” 엄마의 언성이 점점 높아진다. 아이는 이제서야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게임에 너무 집중했나 보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했던 놀이들, 또한 지금도 하고 있는 놀이들. 우리는 그 놀이들에 대해 심각하게 정의를 내리거나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게임도 놀이이고 나가서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노는 것 또한 놀이이다. 놀이는 분명히 뜻이 있고 규칙이 있으며 하나의 의미기능이다.
하지만 놀이는 인간 세계나 동물 세계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으므로 놀이가 이성적인 관계 속에 기초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놀이는 인간에게만 국한되기 때문이다. 놀이는 어떤 것이나 특정한 문명 단계나 세계관 같은 것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호모루덴스, 호이징하, 김윤수 옮김, 까치, p14
놀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생각하는 ‘논다’는 표현 안에서 놀이가 정의될 수 있을까? 호이징하는 이 책에서 놀이의 범주와 관련하여 여러 놀이 현상들을 신화나 제의 등에 연관시켜서 말하였다. 잘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놀이에 대해 내가 생각했던 것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후의 놀이에 대한 시대적인 생각들을 몇 자 적어보려 한다.
우리는 놀이를 인정함으로써, “정신”을 인정하게 된다. 놀이는 물질이 아니다. 그러므로 놀이는 정신이다. 위의 책 p14
이 말은 그냥 쉬운 말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구절이다. 놀이는 정신이기 때문에 육체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고 물질로는 정의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우선 가정해보자. ‘놀이는 놀이 자체가 아닌 어떠한 것을 위한 것이다’라고. 왜? 무엇을 위해? 이들의 질문에 대한 답은 수도 없이 많다.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답은 상호보완적인 면이 많을 것이다.
내가 생각한 놀이에는 몇 가지 형식적인 특징이 있다. 자유, 무관심성, 장소의 격리성, 시간의 한계성 등이다. 일상적인 혹은 실제의 생활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주 자유스러운 일시적인 활동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긴장의 요소도 포함된다. 놀이를 하면 상대방에게 꼭 이겨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만 놀이 안에서의 규칙을 어기지는 않는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놀이에는 윤리적인 면도 배우게 하는 성질(?)이 있는 것 같다. 이길 수 있다는 용기, 이겨야 한다는 끈기, 게임에서의 공정성 등이 요구되기 때문에 놀이를 통해서 배울 점이 많이 있는 것 같다.
헌데 제의도 놀이가 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보통 제의라 하면 성스럽고 진지한, 경건한 분위기가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제의가 놀이와 공통된 점이 뭐가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가장 큰 공통점은 일상생활과 격리된다는 점 같다. 놀이나 제의 모두 일상생활에서는 벗어난 행위이기 때문에 공간적으로 제한된다. 놀이는 그 안에서 놀이의 규칙이 통용되며 제의는 성스러움의 테두리에서 제의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가장 원초적인 성스러움이다. 두 번째 공통점을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바로 진지함이다. 놀이라고 하면 가벼운 생각이 들지만 놀이 안에서는 진지하다. 제의는 물론 진지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경건한 분위기에서 웃거나 큰 소리로 떠들어보자.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뿐만 아니라 매너가 없는 사람으로 오인될 수도 있다.
바야흐로 놀이의 시대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놀이를 빼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가장 흔하고 접하기 쉬운 예를 들자면 문화에서 그렇다. 놀이가 문화보다는 오래 됐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 것이고 동감할 것이다. 문화는 인간 사회를 전제하고 있지만 놀이는 우리가 기다린 것도 아니고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 것이다. 놀이는 그 놀이를 할 때만큼은 일정한 규칙 안에서 놀이 주체를 일상생활과 단절시킴으로써 독특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거기에 우리는 쾌감이라든지 즐거움을 느끼며 그 안에서 승리감 또는 패배감도 맛볼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놀이여서인지 사람들은 놀이를 부정적으로 보려는 시각이 있다. 어쩐지 생산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부정적 측면의 소비적인 이미지로 굳어져서 오랫동안 주 문화에서는 기피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더 이상 놀이는 그러한 폐쇄적인 공간에서 나와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되고 놀이 없이는 살 수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그러한 시대가 왔다. 이제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것은 놀이이다. 이렇게 말해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엔터테인의 시대가 온 것이다. 예전에는 대학교 전공과목을 선택할 때에도 신방과나 언론정보학과는 그리 인기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각 대학마다 신방과나 언론 홍보, 광고학과들이 인기학과로 대두되면서 사람들에게 주요학과로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이 놀이와는 큰 상관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주로 놀이 문화를 다루는 방송매체나 잡지 등을 생각해볼 때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디지털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단순히 잘 먹고 잘 살기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즐겁게 살까 하는 삶의 질을 지향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즐거움의 놀이만의 기능이 아닌 뭔가 새로운 것을 원한다. 그저 노동을 위한 재충전의 도구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가치를 창출해내는 21세기에서는 놀이가 그 자체뿐만 아니라 자본과 노동의 방향까지도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호이징하가 주장한 것은 호모 사피엔스도 아니고 호모 파버도 아니다. 호모 루덴스이다.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 말은 모든 문화가 놀이에서 발생되었다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놀이는 당시 문화의 주요한 욕구에 대한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반응이다. 놀이의 성격은 그것이 유행하는 시대의 사회적 관습, 제도 사이에 친화적인 관계가 있다. 그래서 그 시대의 놀이를 알면 문화를 알 수 있는 것이다.
호이징하가 만약에 우리 시대에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자신의 선견지명(先見之明)에 놀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에는 호평을 받지 못했어도 지금 내다보면 호이징하가 말한 것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가 있다. 미래를 내다보는 눈. 호이징하는 그걸 가졌던 것이다.
현대에 오면서 놀이는 그 의미를 잃고 있는 듯하다. 역동성을 잃은 채 구경거리화 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인들은 대부분의 놀이시간을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등과 함께 보내고 있다. 이 같은 행동들은 단지 의사놀이에 불과하고 판에 박힌 지루함과 중독성의 위험을 안고 있다. 즉 놀이가 일종의 덫으로써 상상력을 제한시키고 수동성을 초래하게 한다. 결국 사회의 변동이 놀이문화도 변동시키면서 놀 때조차도 즐거움을 잃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하루 빨리 우리의 의식 속에서 벗어나서 삶의 질을 추구하는 현대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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