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와 조상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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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가톨릭 교회와 조상제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중국의례논쟁
2. 제사와 한국교회
3. 제사의 허용과 한국교회 지침
4. 유교조상제사
본문내용
1. 중국의례논쟁
천주교가 전래되던 당시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권에서는 생활 전반에 걸쳐 유교사상과 문화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고 부모와 공자에게 제사를 드렸다. 이러한 동양인들에게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왜곡되지 않게 전하는 것이 가톨릭교회가 선교과정에서 지닌 어려움이었고 이것이 곧 조상제사 문제의 시발점이 되었다.
16세기 말 최초로 중국선교에 나섰던 마태오 리치 등 예수회 선교사들은 적응주의적 입장에서 제사를 허용하고 있었으나 이보다 반세기 늦게 들어온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는 이 선교방침에 반대하여 교황청에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논쟁이 시작되었다. 파리외방전교회의 중국 입국으로 논쟁은 몇 차례 더 가열되었고 교황청에서는 이후 오랜 토론 끝에 1715년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칙서

를 통해서 드디어 조상제사 등의 의례 금지령을 내렸다. 동시에 천주 이외의 용어 사용도 금지되었다. 이 금지령은 1742년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이를 재천명하여 모든 선교사가 이에 서약할 것을 선포했고 이 문제에 대한 더 이상의 논쟁을 금했다. 그리고 1773년에 클레멘스 14세가 예수회의 해산을 결정함으로써 실로 190년간에 걸친 예수회에 의한 포교의 역사는 종막을 고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1. 조상제사(祖上祭祀)에 대한 천주교(Catholic)의 가르침, 이상열
2. Acta Apostolicae Sedis, 1940, pp24~26
3. 가톨릭과 조상제사, 가톨릭신문, 2002
4. 한국천주교회상장례, 박명진
5. 의례논쟁을 다시 생각함, 교회사연구 제32집, 조현범
6. 중국 예식과 그에 대한 서약에 관하여, 1940, 2월호 경향잡지
7. 한국 천주교회와 제사의 공인, 가톨릭사목연구소, 1996
8. 조선조에 있어서 천주교의 폐제훼주와 유교제사의 근본의미,
한국교회사총론, 서울 1982, 최기복
9. Acta et Decreta Primi Concilii Regionalis Coreani 1931 / Nazareth, Hongkong 1932. 교황 클레멘스 11세 칙서(1715년)
하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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