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작가 박태원과 정지용 문학의 존재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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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월북작가 박태원과 정지용 문학의 존재방식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월북작가 박태원과 정지용 문학의 존재방식(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고, 북한문학사에서의 위상평가에 대해서도 비교분석해 보시오.
Ⅰ. 서론
1930년대의 정지용과 박태원은 구인회를 통해 만난다. 두 작가가 1930년대의 중요한 예술가로 자리매김한 것은 장르는 다르지만 모더니즘을 개척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박태원은 1909년생이라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는 24세로 약관의 나이였다. 정지용은 당시 박태원보다 선배의 위치였으며, 구인회의 형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이태준과의 친교관계로 구인회에 들어가게 되었고, 박태원는 경성고보 동창이었던 조용만의 천거로 가입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태상. 탈식민주의 담론을 통해 본 지용과 구보문학의 존재방식. KNOU논총57집. 2014.
박태원은 이광수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근대 문학, 이후 김동인과 염상섭, 현진건을 통해 단편 문학이라는 외형적 기틀을 마련하게 되고, 30년대 김유정, 이상 등을 통해 문학 내적, 기법적 다양성을 이룩할 수 있게 되었다. 박태원도 1930년대 김유정, 이상 등과 함께 이러한 근대 문학의 내적, 기법적 깊이를 일구어 낸 작가 중 하나로, 종래에 없었던 독특한 서술양식과 기법으로 우리 근대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작가 박태원의 작품 활동 전체를 놓고 본다면 모더니스트로서의 활동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로서의 나머지 생애 대부분을 그는 역사소설을 저술하는 데 보낸다. 그러나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이라는 두 가지 혼재된 양상을 보이는 박태원 문학은 문체와 표현기교에 있어서의 과감한 실험적 측면과, 또 시정 신변의 속물과 풍속세태를 파노라마식으로 묘사하는 소위 세태소설의 측면에서 특이하게도 문단의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으며 우리의 근대 문학에 있어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박태원에 관해서 기존의 연구를 검토해 보면 1930년대 후반부터 최재서, 안회남이 말한 기교의 문학, 스타일리스트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송영과 임화가 말한 작가의식의 부재라는 부정적 평가가 동시에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최재서는 박태원의 에서 인간 내면의 주관조차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영화적 기법, 즉 카메라의 존재를 연상시킨다고 하였고 이러한 논의는 소설에 나타난 영화 촬영 기법에 대한 이후의 여러 연구들을 촉발시켰다. 1960, 70년대에 이르러 부분적으로 단편적인 연구가 시도되었는데 논의의 주된 초점은 구인회의 성격, 모더니즘 운동 전반에 관한 특성 및 문체적인 양식 등이었다. 그리고 1980년대 말 월북 작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박태원과 관련해서는 세태소설, 도시소설 등으로 분류하는 장르에 대한 연구와 작가론적 연구, 모더니즘을 주제로 한 연구, 서술기법에 주목 한 연구 등이 주로 이루어졌다. 1990년대의 박태원 연구는 주로 모더니즘 소설에 대한 인식을 넓히려는 시도와 박태원의 월북 후 문학 활동 연구에 초점을 맞췄다.
2000년 이후 근래에 들어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주로 하여 이루어진 연구를 정리하자면, 박태원, 최인훈, 주인석이 각각 쓴 세 편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중심으로 패러디 기법에 주목하여 근대성의 변화양상 연구, 비교 연구와 소설 쓰기의 의미 연구 등 기법에 주목한 연구가 여러 번 이루어졌다. 또한 1930년대 ‘경성 모더니즘’의 모더니즘적 서술 특성을 박태원의『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중심으로 연구하려는 시도와 안혜연,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연구 : 모더니즘적 서술 특성을 중심으로 전남대 대학원, 1996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보이는 텍스트의 재현양상 속에 미학적으로 드러나는 박태원의 ‘정치적 무의식’을 고찰하는 연구가 있었다. 권은,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의 정치적 무의식 연구, 서강대 대학원, 2008
정지용은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1929년부터 8·15 해방 때까지 모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면서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펼쳤다. 1930년에는 김영랑과 박용철이 창간한 “시문학”의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33년에는 “가톨릭 청년” 편집고문을 맡으면서 이상이라는 천재를 세상에 알렸다. 한편 반카프적 입장에서 순수문학을 옹호하는 구인회(九人會)에 참여하는 한편, “문장”의 시 부문 고선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박목월·조지훈·박두진 등의 청록파 시인을 비롯하여 박남수 등의 걸출한 시인들을 시단에 소개했다.
해방 직후부터 그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이듬해인 1946년에는 좌익 계열의 조선문학가동맹에서 중앙 집행위원을 맡았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보도연맹에 가입되어 사상 전향의 강연을 했다. 이 무렵 그는 거의 시를 쓰지 못한 채 한국 전쟁을 맞았다. 오랫동안 그는 납북되어 북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최근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1950년 납북되던 중 미군의 동두천 폭격에 휘말려 타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Ⅱ. 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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