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공용화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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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어공용화 논쟁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민족주의 국가의 언어관
2. 계통론과 제국주의

3. 글로벌 및 경제블럭 시대의 영어의 위상

4. 새로운 시대의 새 언어
본문내용
2. 계통론과 제국주의

계통론적인 분류는 언어의 두 가지 특성, 즉 언어기호의 자의성과 언어변화의 규칙성에 의하여 가능한데 비교 방법에 의하여 각 언어간의 친소 관계가 정해진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같은 어족의 우랄 알타이어이기 때문에 당연히 같은 어원이 많을 것이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야마토 조정과 한반도 언어가 상당 부분 같았던 것 같다. 이를테면, 신라의 사신이 일본(나라조정)에 갔을 때 통역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비롯해서 만엽집(万葉集: 630~760년에 쓰여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의 상당부분은 한반도 언어(특히 '이두=吏讀' 식의 경상도 방언)로 읽어야만 해석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특히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박사의 ‘기마민족정복왕조설’은 ‘일본국가의 기원은 동북아시아에 살고 있던 기마민족이 한반도를 거쳐 서일본을 정복해서 왕조를 세운 정복왕조에 있다’고 주장을 담고 있다. 이후 에가미 나미오의 ‘기마민족정복왕조설(騎馬民族征服王朝説)’은 찬부 양론으로 갈라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외에도 한국과 일본은 조상이 같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것이 과거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나아가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며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침략전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제국주의라는 말의 어원은 라틴어의 imperator(황제), imperium(제국)인데,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와 3세의 로마제국 재현의 시도를 제국주의라 하였다. 그러나 이 말이 일반화된 것은 나폴레옹 3세의 몰락을 보도하였던 영국의 신문 ‘데일리 뉴스’의 1870년 6월 8일자 보도에서 프랑스 제2제정을 제국주의라고 지칭한 후부터이며, 그것은 전제정치와 동일한 의미였다.
제국주의란 말이 사회적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1877년 러시아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려고 하였을 때 영국의 총리 B.디즈레일리가 무력행사에 의한 강경정책을 취하여 이른바 징고이즘(jingoism)이 생겨난 이후부터이다. 이 때부터 제국주의는 종종 열광적인 주전론과 같은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1880∼1890년대 영국은 제국주의를 영국의 번영과 진보를 상징하는 표상으로 여기는 경향이 생겨 그것을 오히려 구가하였다. 그러나 1870년경부터 제국주의라는 말은 근대적인 의미와 내용을 가진 말로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사회적 불안이 증대하는 한편 자본주의국가간의 팽창주의적 경쟁이 격화되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자유무역정책을 보호정책으로 전환하고 광대한 식민지를 통일적으로 긴밀히 조직